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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밥상은 누가 어떻게 차렸을까? 함부로 답하기 어렵다. 다만 문서를 더듬어 윤곽이나마 그리는 수밖에 없다. 먼저 궁 안 음식 업무의 중심에 사옹원(司饔院)이 있다. 그 아래 총주방인 수라간(水刺間), 일상의 끼니를 차리는 외소주방(外燒廚房), 술이 있는 제2주방인 내소주방, 과자 등 간식류를 맡은 생물방(生物房)이 소임에 따라 움직였다. 궁 밖에서 큰 연회가 열리면 임시 주방인 조찬소(造饌所)를 열어 음식을 차렸다.

사옹원 인력은 본격적인 조직표 아래 움직인 전문 음식 인력이다. 업무는 오늘날 못잖게 섬세하게 나뉘었다. 사옹원의 총책임자 아래에는 총주방장과 부주방장 격의 인원이 배치된다. 그 아래 오늘날로 치면 주방장 노릇을 하는 반감(飯監)이 배치된다. 그 아래로 다시 분야별 담당인 각색장(各色掌)이 업무를 맡았다. 고기 음식 담당 별사옹(別司饔), 물 담당 탕수색(湯水色), 상차림 담당 상배색(床排色), 생선구이 담당 적색(炙色), 밥 짓기 담당 반공(飯工), 두부 담당 포장(泡匠), 술 담당 주색(酒色), 차 담당 차색(茶色), 떡 담당 병공(餠工), 찜 담당 증색(蒸色), 조명 담당 등촉색(燈燭色), 기물 담당 성상(城上) 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조직표는 <경국대전> 등 정부의 문서에 남아 전한다.

행사 규모에 따라 꼭 필요한 임시 전문직도 그때그때 충원했다. 숙수(熟手)는 상당한 수련을 거친 전문 요리사로서 죄다 남성이었다. <대장금>은 재미난 방송극일 뿐이다. 별다른 동력 없이 오로지 인력만으로 불도 피우고 물도 긷고 온갖 채비와 차림까지 감당하던 옛날, 종일 업무가 가득한 주방의 일이란 어마어마한 근력과 완력이 드는 일이다. 그러니 남성 노동력 중심으로 주방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눈여겨볼 만한 데는 따로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그때 이미 혼인이나 회갑 잔치의 음식은 ‘선부(膳夫)’, ‘숙수’라는 전문 요리사가 맡는 경우가 많았다. “돈만 있으면(苟有錢貨)” 궁에서 훈련한 전문 인력을 돈 내고 쓸 수 있었다. 바로 여기다. 궁은 팔려고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반가, 사찰도 마찬가지다. 팔려고 하는 순간 음식과 관련한 모든 일은 ‘요식업’으로 순간이동한다.

모든 사물과 추이에는 안팎이 있다. 뒤집어 바깥을 살피면, 궁 안의 요리사가 권력자와 부자의 잔치에 불려 밖으로 돌아다니는 모습도, 스스로 밖으로 나가 돈벌이에 나서는 모습도, 프랑스대혁명 전후 프랑스 음식 문화사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면 안에서 익힌 감각과 기술로 밖에서 자립한 예가 있는가. 그야말로 요식업을 세웠는가. 거기에는 못 미쳤다. 안의 인력을 밖으로 꾸준히 불러낼 자본은 영세했고, 역사의 시간은 모자랐다. 조선 왕조가 망할 즈음, ‘밖’에 꽤 준수한 음식과 인력을 뿜을 ‘안’도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이윽고 안팎의 역동이 멈춘다. ‘안’의 약삭빠른 몇몇이 요릿집 또는 요정에 심어, 해방 전에 대중화해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궁중음식’은 또 다른 문제다. 함부로 답하기 어려운 문제를 곳곳에 품고, 음식 문화사는 오늘도 한국인의 공부를 기다리고 있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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