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양극화가 교육의 기회마저 양극화하는 현실. 이에 대한 공분과 개탄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필요한 과정일 것이고, 잠시 들끓다 사라지기보다는 고민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체감하는 불공정이 단지 불완전한 제도만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직장생활 초기, 다소 실험적인 업무를 제안하여 비정규직 팀을 이끈 적이 있다. 큰 고민 없이 모교의 조교실에 추천을 의뢰했고, 몇 명의 여성 후배들을 채용했다. 대졸 여직원이 극히 드물던 시절이었다. 젊고 재능 있는 여성직원 팀에 쏟아지는 관심이 제법 컸고, 대학 타이틀이 후광을 더했다. 활기 넘치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임원 한 분이 “너도 라인 만드니?”라는 농담을 던지셨다. 대개의 임원이 특정 대학 출신이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무언가 잘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성과를 인정받아 팀원을 늘리게 된 이후로는 채용에 더 신경을 썼다. 

올바름을 실천했으니 성과는 물론 보람도 높아질 차례였다. 휴머니즘 가득한 드라마의 결말은 늘 그랬으니까. 그러나 어쩐 일인지 현실은 사뭇 달랐다. 자부심 강한 이전 팀원들과 새로운 팀원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고 갈등도 발생했다. 학력과 상관없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팀원이 들어와도 쉽게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선배의 뜻은 좋지만, 똑같이 취급하는 건 좀 불공평한 것 같아요”라며 속내를 드러내는 팀원도 있었다. 

다소 특별했던 팀의 위상도 점차 평범한 비정규직 팀으로 하락했다. 주어진 후광과 선망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 어리석었나 고민도 했다. 부족한 성품에 성숙하지도 못한 초보 관리자가 지향했던 작은 정의의 결과는 드라마처럼 훈훈하지만은 않았고, 꽤 오랜 시간 진통을 감수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들 모두 비정규직의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내부에서 또 다른 계층과 순위를 나누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고질적 사회문제의 근원에는 프랙털 구조처럼 반복하며 확장되는 일상의 불합리가 존재함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나의 불평등과 타인의 불평등을 같은 무게로 인식하지 못하는 둔감성 혹은 이기심이 내 안에도, 그들 안에도, 조직 속에도 무수히 존재했다. 최근 외국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명문대학원에 입학한 학생이 집단따돌림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한 기사를 읽었다. 우리 사회의 학벌 이기주의는 정도를 넘어섰다. 

오랜 사회 경험 속에서 깨달은 엘리트주의의 허구성을 논한 글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중에도, ‘본인의 학력이 낮아 억울한가 보다’라는 조롱 글이 달렸고, 그 글엔 다시 나의 이력을 검증하는 글이 달렸다. 학벌 사회를 바꾸자는 의견조차 스펙을 인정받아야 하고, 약자보다는 기득권자가 논해야 귀를 기울이는 세상이다. 각자의 마음 밑바닥에 자리한 서열중심의 사고와 배타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비정상적인 과열 입시나 경쟁 역시 여하한 제도나 공정한 리더의 등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평등의 리더십이 그리울 때 사람들은 노무현을 소환한다. 기득권을 누리기보다 소탈함과 높낮이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함께하던 그의 남다름을 추억한다. 그가 다시 오면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학력을 이유로 무시한 명문대 출신들만이 아니라, 그가 눈 맞추려 했던 낮은 곳에 있는 이들조차 그를 얕잡아 보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가 권력의 후광을 이용했어야 한다고 애통해한다. 

강자는 강자라서, 약자는 약자여서 힘과 권력을 선호하는 것이 동물적 본능이다. 사람의 모습을 한 동물이 진정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부단한 자기 성찰을 필요로 한다. 동물성은 인간성보다 강력하다. 잠시라도 성찰을 게을리하면 이기의 발톱이 살을 뚫고, 오만의 어금니가 날카롭게 돋아난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앞서서 얼마나 누릴 것인가에 있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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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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