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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공감]바라는 것이 있다면

경향 신문 2019. 4. 3. 10:58

그 애는 먼 곳의 커피가게로 나를 데려가서 말했다. 네가 좋다고, 사귀고 싶다고. 어깨를 떨며 이야기했다. 고백을 받다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었다. 둘 다 대학 3학년이던 스물두살 때였다. 

함께 영화관에 가면 스크린이 아닌 내 옆모습을 쳐다보고 있었고, 무심코 두유를 좋아한다 말했더니 다음날부터 본인도 아침에 우유 대신 두유를 먹는다 했다. 전화 안 받으면 짜증 내는 대신 조바심을 보였다. 그런 게 그저 신기했다. 고교동창의 동아리 친구였던 그는 이름보단 전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재료공학. 그것이 어떤 학문인지 모르면서 나는 툭하면 “이걸 재료공학적으로 설명해줘” 하고 억지 부렸다. 그럴 때마다 미간을 좁히며 설명해보려 골똘하던 표정이 지금도 떠오른다. 나와 마찬가지로 연애가 처음이던 그 친구는 이렇듯 매순간 진지하게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애쓰는 게 언제부턴가 싫어졌다. 왜 그리 싫던지. 처음 손잡은 날은 나를 연애실험쥐 삼아 나중에 더 예쁜 친구와 능숙하게 사귀겠지 싶었다. 그런 싸늘한 마음을 품었더니 안 그래도 찬 손발이 더욱 차가워졌다. “너, 손이 얼음 같아”라며 그 애는 드라마에서 본 양 본인 외투 호주머니에 내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 그 수줍음도 괜히 미웠다.

그때껏 나는 화를 내본 일이 거의 없었다. 누구에게든 적어도 못된 사람은 아니었던 난 비겁하게도 처음으로 나를 좋아해준 이에게 변덕스럽고 못된 사람이 되었다. 애태우고 싶어 일부러 휴대폰을 꺼둔 적도 있었다. 결국 어느 저녁, 밥을 몇 숟갈 더 뜨라 권하며 “야위면 신경질이 많대”라고 진지하게 말한 순간 나는 폭발했다. 그는 “나도 미숙해서 미안했지만 너도 조금 독특한 것 같아”라고 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한편 누군가에게 내 쪽에서 먼저 고백하진 않았어도 당시 주위에선 눈치챘을 것이다. 옆을 지나기만 해도 얼굴이 빨갛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당사자들 또한 알았을 테지만, 내가 좋아하건 말건 그들은 어차피 관심이 없었다. 

총학생회 후원주점이 열린 토요일 저녁, 다른 단과대 학생회장이었던 모 선배가 온다는 사실을 미리 확인한 나는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학생회관 구석에서 파전을 부쳤다. 턱선이 뾰족하면 그 스타일이 어울린다고 어디서 주워들었던 것이다. 그는 내가 전을 굽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먼저 나를 발견한 건 우리 학과 선배였다. 선배는 며칠 전 회의에 무단으로 결석한 일을 두고 큰소리로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주위 시선은 일제히 이쪽으로 향했고 그의 시선도 거기 있었다. 삐삐머리를 한 채 파전을 굽다 말고 혼나는 자를 향한, 민망함과 한심함과 황당함이 섞인 눈길. 나는 화장실로 뛰어가 갈래머리를 풀어 한 갈래로 묶었다. 울고 싶었다.

사귀기를 소망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 사람에게서 어떤 그늘을 보았고, 다른 누구보다 내가 그 그늘을 잘 이해할 거라 믿었다. 그가 좋아한다는 이런저런 책과 영화와 이론을 나 역시 좋아했다. 이 사실을 선배가 알았으면 했다. 그뿐이었는데, 왜 그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는 내가 되지 못하는지 그땐 알 수 없었다. 본인은 나보다 더 복잡하면서 왜 단순한 사람을 편안해하는지, 나보다 더 어두우면서 왜 화사한 사람을 아껴하는지. 한참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가 갈구했던 대상은 캄캄한 동굴 같은 내면을 누일 볕처럼 따사로운 존재였음을. 한데 본인과 꼭 닮은 누군가가 등잔도 등유도 지니지 않은 채 언저리를 기웃거리니 피하고 싶었던 게다. 오래전 그 시절, ‘진지하게 애쓰기’의 화신은 오히려 나였으나 마음 다친 쪽은 먼저 더 다가섰던 ‘재료공학’이었듯이 말이다. 

이기적이게도 나를 좋아해준 사람들보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생각이 더 난다. 알고 보면 세상 온갖 사랑이야기가 이 비대칭성과 불공평함에서 기인했을 테고, 뭐 그리 특별할 것 없다.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십 수년 전의 민망하고 한심하고 황당했던 삐삐머리가 지금 여기, 고단한 현실에서 이따금 꺼내볼 웃음의 기억 한 조각으로 상대에게 남겨졌으면 하는 것이다. 어디서든 재료공학이란 단어에 닿을 때면 외투 호주머니로 손을 가져가던 그 수줍음을 떠올리며 내 마음이 난로 위 보리차처럼 데워졌듯 그렇게.

<이소영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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