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당대의 세계관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명제가 옳다면, 나의 유년기와 함께했던 숱한 동화나 전설은 일찍부터 어린아이들에게 불공정한 생존법칙을 주입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은 대개 천성적으로 잘나고 고귀한 존재들이었다. 미남미녀에 영리하고 지혜로운 데다 선함과 용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무엇 하나 모자란 것이 없었다. 미운 오리마저 알고 보니 백조였다. 반면 그들을 시기하고 고난에 빠뜨리는 이들은, 어리석은 데다 성품은 교활하고 외모도 주인공을 따를 수가 없다. 주인공이 이기는 것이 당연했다.

시대가 변하며 오랜 시간 당연시되었던 삶의 법칙과 세계관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새로운 룰을 보여주며 현대의 전설이 되어가는 작품들 중에는 최근 흥행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왕좌의 게임>도 있다.

<왕좌의 게임>은 판타지물이다. “드라카리스!”라는 주문과 함께 하늘을 날며 불을 뿜는 용과 마법사도 등장한다. 그러나 마법은 단지 거들 뿐, 드라마는 익숙한 영웅 공식을 가차없이 배반하며 다큐멘터리에 근접하는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잘 생기고 영리하고 힘 좋은 자들, 최후까지 남아 정의사회를 구현할 것 같던 매력적이고 존귀한 자들이 속절없이 비참하게 죽어나간다. 죽음의 신에게 세속의 영예 따위는 아무런 관심사가 아니다.

이 잔혹한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름을 잃은 서자, 노예로 팔려갔던 공주, 정략결혼의 희생양이자 능욕당한 여인, 거세된 군인, 난장이, 불구가 된 소년, 자수보다 칼 싸움을 좋아하는 소녀 같은 혹독한 야생의 삶을 살아온 이들이다. <왕좌의 게임>은 철 왕좌를 향한 영웅들의 무용담이라기보다는 소외되고 부족함 많은 이들이 각자의 결점을 극복하고 연대하며 굳건하게 역경을 극복해나가는 성장 서사에 가깝다. 

수많은 영웅, 전사, 현자들이 각축을 벌이지만, 가장 평범한 호빗족 소년 프로도의 손에 절대반지를 쥐여준 <반지의 제왕>처럼. 사람들이 기피하는 소수자들의 아픔과 분노, 인정받지 못한 재능을 은유한 엑스맨과 돌연변이들처럼. ‘어벤져스’의 슈퍼 히어로들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을 잃고 쫓겨난 왕자, 분노조절 장애 과학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슈퍼 리치, 스파이로 양성된 고아 소녀가 그들의 본 모습에 가깝다. 모든 것을 갖춘 영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어벤져스 엔드 게임>

<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현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와 흐름, 극복해야 할 구시대적 사고 등 많은 것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히어로들과 싸우는 타노스는 요즘 말로 ‘마초 꼰대’의 정석이다. 그는 볼수록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닮았다. 한편으로는 정이 깊은 인물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에 갇혀 선악을 판단하고 세상을 응징하려 든다. 딸들 역시 자신의 뜻대로 개조하고 복종시키며, 필요하면 희생도 강요한다. 막강한 힘을 가진 그의 곁에는 많은 부하들이 있지만, 석양 속 거대한 몸집의 실루엣은 한없이 외로워 보인다. 영화는 그의 딸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가를 보여준다. 

그루트와 로켓 라쿤으로 대변되는 자연과 생명 존중 사상, 간간이 끼어드는 양념의 역할이 아니라 충분히 제 몫을 해내는 여성들의 활약, 미국의 현실적인 부와 자본을 상징하는 아이언맨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서서히 부상하는 아프리칸 파워 등. 공생을 도모해야 하는 지구촌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특히 리더인 캡틴 아메리카가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쇠락하는 백인 패권주의에 대한 연민, 오랜 수고에 대한 존경, 독려와 함께 변화되는 미국의 권력 방향을 암시한다.

상업적 목적이건, 이상적 지향이건 미국의 지식인들이 공존의 세계관을 수용하고 제시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느낀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자국 우월주의와 과도한 상업성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는 아름다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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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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