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세상은 선의로 가득해 보인다. 이번 생은 망했지만 죽어서는 천국을 누리자며 가가호호 초인종을 누르는 상냥한 자매님들. 못난 중생들이 안타까워 함께 도통 세계에 들자고 손 내미는 형제님들. 올바른 국가관과 정의를 설파하고픈 열정으로 가득한 어르신들을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달리는 택시에서 무수히 만난다. 

SNS는 또 어떤가. 조목조목 공정하고 지혜로운 집단지성의 숲을 거닐다 보면, 이미 천국이 가까이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이토록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데, 어째서 안정된 삶을 위협하는 악당(빌런)들은 끝없이 나타나는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 지방의 교도소에서 강의를 했다. 감호시설은 처음인 데다 수십명의 대상자 모두 남성이라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들어온 이도 있겠지만, 아직은 나의 이해력이 닿지 못할 마음의 심연을 가진 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들어간 강의실에는 앳된 청년에서 중장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무심한 눈빛들이 시간이 지나며 편안하게 바뀌어 다행스러웠다. 무엇보다 ‘소통’과 관련된 실습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청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진지한 경청과 정확한 이해, 따스한 공감의 언어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강의를 마치고 오는 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청년은 어떤 이유로 그곳에 있을까. 혹시 그 타고난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불행한 환경이나 안타까운 상황으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여자 친구와의 대화가 힘들다고 했던 재소자는 소통이 어려워서 육체적인 폭력이라도 저지른 것일까’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토로한 이의 부모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들의 속사정을 다 알 수도 없고, 잠시의 인상만으로 섣부른 동정심이나 이해를 표하며 지옥 같은 삶을 경험했을 피해자들을 망각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 다양한 범죄와 가해자의 심리에 대한 학습을 해오면서 고민하는 부분은, 타고난 범죄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 살인마부터 소소한 절도범까지, 거의 모든 범죄의 배경에는 불안정한 환경이나 부모가 있다. 간혹 사이코 패스라 불리는 선천적인 공감능력 결여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매우 극소수다. 뉴스에서 흔히 다루는 조현병으로 인한 강력 사건의 가해자도 마찬가지다. 범죄의 우려로 격리가 필요하다면 가족이나 친구들을 멀리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잔혹 범죄나 성범죄의 대부분은 가장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조현병은 폭력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이 폭력적인 환경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로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공격성을 가진 이도 드물다.

범죄 행동은 궁핍한 경제적 사정과 육체적 폭력이 일상인 가정에서 쉽게 발현되지만, 그것은 협의의 범죄개념으로 국한될 경우에 그렇다. 법망을 피해가는 더 큰 의미의 범죄자들은 오히려 외형적으로는 안정되어 보이는 가정에,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모들을 둔 경우도 많다. 

정서적 문제로 심리상담을 하는 청소년들의 부모 직업 상위에는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들이 나란히 올라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부모와 더 행복하고 선량한 아이의 상관관계는 크지 않다. 

지구 평화가 요원하고 곳곳에 다양한 빌런이 계속 출몰하는 이유는, 악을 쳐부수는 어벤져스가 없어서도, 위대한 가치를 논하는 이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쉼 없이 자신의 올바름을 주장하고 타인에게 손가락질하느라 정작 자신의 자녀와 가족이, 혹은 바로 그 자신이 흑화해 가는 것을 방치하기 때문이다. 

타인과 외부로 향한 분노의 시선을 줄이고, 자신의 내면과 가족의 눈길을 마주하는 따뜻한 시간을 늘려보자. 어느 순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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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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