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누아르’라고 불리는 장르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폭력조직에 잠입한 경찰이 어느 틈엔가 조폭 두목과 짙은 형제애를 느끼게 된다거나 그 반대의 이야기들. 단단히 정신무장을 하고 적의 내부로 들어가지만, 자신을 아끼고 챙겨주는 사람 앞에서 서서히 허물어지고 물들어가며 어느 순간 동화된다. 백색과 흑색은 대척점에 있지만, 모호한 회색지대를 거쳐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스스로 멈추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한 몸이 된다.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여서 가능한 스토리만은 아니다. 심의가 없는 현실 누아르는 자주 창작물의 세계를 앞선다. 모 언론사의 논조가 특정 조직에 편향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내부 사정을 아는 이가 이야기한다. 그 언론사의 책임자가 특정 조직과 친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도 처음엔 충분히 성실하고 정의로운 기자였단다. 그저 취재하는 조직의 내부를 알기 위해 친분을 쌓기 시작했는데 점차 정서적 밀착으로 변질된다. 좋은 정보를 많이 얻었기에 중요한 자리까지 승진했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며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슬픈 결말. 한 개인이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며 축적한 신념이란 것이 연고 앞에서 봄날의 눈만큼이나 허망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변질이 특정 개인이나 조직에 국한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성을 담고 있다는 데 있다. 다양한 사람이 함께하는 소셜 모임을 몇 번인가 경험했다. 이런 곳엔 늘 중심 인물이 있기 마련인데,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분도 있다. 어느 쪽이건 명망이 높을수록 과도하게 밀착하는 추종자들이 있고, 이로 인해 초심을 잃는 것을 보기도 한다. 매섭게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아닌 경우 대개가 그렇다. 호의와 특혜가 일상인 삶을 살다 보면, 이성은 둔감해지고 감성은 혼탁해진다. 적정한 거리에서 신뢰와 우정을 유지하고픈 맑은 성향의 사람들과는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인연을 정리하게 되고 자기기만의 상태로 고립된다.

최근 검찰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 공무원이 가질 수 있는 권한 행사의 도를 넘었다는 세간의 민심이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바다에 이르더니, 해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호받아야 할 법 앞에서 오히려 모멸감과 공포, 배신감을 느꼈던 많은 국민의 아픈 경험들이 민감한 정치사안 속에서 분노를 촉발시켰다.

잠시 감정을 멈추고 생각해 본다. 그들 모두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를 혁신하고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꿈을 꾸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꿈을 위해 거쳐온 수많은 시험보다 더욱 줄 세우기가 분명한 조직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다. 자신들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군사정권만큼 무모한 신념에 빠지게 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과는 다른데,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이 억울한 이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소신과 할 말이 넘쳐나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 대다수가 국민과는 동떨어진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유난히도 관계망이 촘촘한 사회에서 이성이 숨쉴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왕따나 소외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가장 강력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므로 더 많이 계산 없이 사랑하고 사랑 받기를 원한다면, 관계에서 느슨해져야 한다. 진정한 인류애를 고민해야 할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라면 더욱 자신의 위치를 중심이 아닌 경계에 세우는 노력을 쉼 없이 해야 한다. 배타적 조직의 형제애와 신념은 담합이 되고, 굳건할수록 더욱 강력한 악이 된다. ‘괴물’은 ‘과도한 영향력’의 다른 표현이다.

외로운 인생길에 내 편은 반드시 필요하다. 내 편은 한통속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밖에서 자신을 꺼내주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사랑하려면 외로워져야 한다.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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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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