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즐겨 보던 무협영화나 소설에는 공식이 있었다. 우직한 주인공이 무공 높은 노인을 찾아가 제자를 자청한다. 대부분은 가족을 죽인 악당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마음이 급한데 스승은 명성과 달리 수년 동안 무술은 안 가르치고 잡일만 시킨다. 청소, 밥짓기, 물긷기, 장작패기 등. 자신이 문하생인지 가사 도우미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복수도 하기 전에 원수가 자연사하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된다. 주인공이 내적 갈등을 겪는 동안 먼저 들어와있던 수제자가 속삭인다.

“아무래도 저 사부는 가짜인 듯….” “이건 열정 페이, 노동력 착취야.”

영리한 녀석답게 강호의 유명한 소속사, 아니 무술학교로 옮기고 얼마 안 가 스타 무술인이 된다. 이상하게 스승은 녀석이 떠난 후 고급과정을 전수하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절대무공을 연마한다. 결국 두 녀석이 맞붙고 처음엔 기술 좋은 영리한 녀석이 이기지만, 기본기 탄탄한 우직한 녀석이 강호무림을 평정한다.

스토리는 다양하게 변주되지만 골격은 늘 비슷했다. 당시엔 스승들의 느리고 심술궂은 교육법이 다소 못마땅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다른 것들이 보인다.  

‘저 시간이 모두 내공을 기르는 과정이었구나. 쌀의 돌을 고르며 집중력을 배우고, 물 지게를 지며 균형감도 기르고, 빨래와 나무를 하며 근육과 기초체력도 강화되었겠다. 헬스시설도 없고, 헤드폰 쓰고 집중력 기르는 교재도 없던 때 아닌가. 청결한 일상과 노동의 소중함도 깨닫고, 무엇보다 욕구를 조절하고 인내하며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을 보았겠지.’

요즘 같으면 법정 소송도 들어갈 일이지만, 스승이 제2의 아버지 역할을 하던 시절에는 자식 같은 제자의 재능계발 이상으로 인성함양도 중요했을 것이다. 같은 것을 배워도 어떤 이는 세상에 도움이 되고 어떤 이는 해악을 끼치는 것을 아는 지혜로운 스승이라면 더욱. 

최근 ‘버닝썬’ 사태로 인해 연예인들의 묻혔던 일탈 행각이 다시 거론되며, 유명 연예 소속사들의 인재 철학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전혀 다른 가치관을 보여준 JYP 박진영과 YG 양현석의 인터뷰 내용들이 그렇다. 박진영은 “아무리 노래 잘하고 춤을 잘 춰도 맑고 건강하지 않으면 함께 일하기 싫다. 그런 친구들의 꿈을 굳이 왜 이뤄줘야 하는지 모르겠고,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과정이 행복한 게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한 능력과 자질이 없는 친구들을 뽑을 수는 없지만, 재능이 특출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배려하고 팀워크를 잘 이뤄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선호한다”고도 했다. 반면 양현석은 “박진영은 착한 사람이 좋다지만 나는 반대다. 우선 순위를 두자면 재능 있는 사람, 열심히 하는 사람, 착한 사람 순이다. 20년간 일하다 보니 ‘병아리 감별사’처럼 빠르게 스타를 판단하는 눈이 생겼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는 어떤 이의 철학을 듣고 보는 대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생각의 일부만으로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다 알기도 힘들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YG의 유명 연예인들이 대마초 사건부터 마약 밀반입, 군복무 불성실에 특혜논란, 사기횡령까지 줄줄이 문제를 일으킨 반면 JYP 쪽은 큰 문제가 없는 편이고, 이번 버닝썬 사태에도 수많은 소속사 연예인들이 거론되는 데 반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점들을 보면서 대표자들의 운영철학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뛰어난 재능으로 인정받고 흠모의 대상이 되던 이들의 일탈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혀를 차며 이야기한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지.”

하지만 말과 달리 부모도 스승도 온통 스펙 쌓기와 명성, 부와 권력을 추종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 ‘인간됨’을 실천하기란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무법천지, 주화입마의 상태에 빠진 유명인들은 그저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의 하나가 아닐지.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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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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