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잘 지낸다고 했다. 목소리도 얼굴도 보이지 않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전하는 근황은 담담했다. 신경정신과에 입원해 한 달간 치료를 받았고 휴직 중이라 했다.

그는 쌍용자동차의 해고 노동자였다가 복직했다. 오랜만에 그에게 안부를 물었던 것은 그의 동료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의 파업 이후 서른 번째 희생자다.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가 대한문 앞에 빈소를 마련한 7월3일 이래 그는 거의 매일 그곳에 있다. 2012년 4월5일부터 그 이듬해까지 꼬박 1년, 그는 대한문 앞에 처음 마련됐던 분향소 천막에서 사계절을 났다. 사망자 24명의 영정을 분향소에 모셨던 때다. “예전에도 분향소를 찾아왔던 분들이 다시 많이 찾아오세요. 빈소를 찾는 분들이 ‘미안하다’는 말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토록 미안함을 계속 느껴야 하는 분들의 마음은 온전할까 싶습니다.”

조문객들이 뜸할 시간이면 방명록을 들춰보며 그들이 남긴 말을 하나씩 읽어본다는 그는 서른 명이 희생되는 과정을 속절없이 지켜보아야 했던 우리 사회의 목격자들, 그 고통에 예민했던 사람들의 마음의 안녕을 오히려 내게 물었다.

1970년대 집단 트라우마(collective trauma)라는 말을 처음으로 개념화한 사회학자 에릭슨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사회적 삶의 생체조직을 훼손하는 일격’이라고 이를 정의했다. 인재로 인한 대형사고, 종교갈등으로 인한 인종청소, 내전 등을 거치며 집단 트라우마를 겪은 공동체에서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불신, 자살 혹은 생명을 거는 위험한 행동, 여성에 대한 폭력, 수치심과 굴욕감, 전통적 가치의 훼손, 세대 간 갈등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게 이 현상을 연구해온 학자들의 공통된 발견이다. 

정리 해고가 ‘사회적 살인’이라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난 20년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으로 인한 ‘사회적 살인’을 끊임없이 목격해왔다. 재난을 멈출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목격자가 된 사람들은 단지 공감의 눈물만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무력감과 수치심, 죄책감을 더불어 안게 된다. 

극한의 조난신호가 여기저기서 떠오르는 동안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많아진 것은 아니다. 대한문에 쌍용차 빈소가 마련되던 날 보수단체 회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빈소 설치를 강력히 저지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망자의 영정을 앞에 두고 “시체팔이 그만하라”며 막말을 퍼붓는, 상식을 넘어서는 일들이 벌어졌다. 집단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상황이 빚어내는 또 하나의 부정적 결과인 가치의 붕괴다.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는 트라우마를 만들어내는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감의 확보다. 해고 노동자에 대한 복직이 시작된 2016년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다가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 복직 위해 노력”이라는 노사 간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2017년부터 다시 29번째, 30번째 죽음이 발생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선별성 없는 복직이 이뤄져야 그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부서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도 안전감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치유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붕괴된 세계관을 회복하고 희망을 갖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언젠가 복직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희망 고문’이라 불러왔다. 희망이란 말이 뼈에 새겨지는 고통이 되는 현실을 10년째 살아온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물구나무선 희망이 제자리를 찾을 때, 재난의 목격자들로서 집단 트라우마를 겪던 시민들도 죄책감으로부터 일어나 자신과 타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붙잡고 울 수 있는 것도 행복이란 것을 아는 이, 남의 깊은 속까지 다 믿고 있는 이가 희망의 신호다. 당당히 걸어서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마종기 시 ‘희망에 대하여’ 중)라는 믿음을 두려움 없이 다시 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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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