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렸을 때는 어린이날이면 종종 집 앞 한강 둔치에 나갔다. 그때만 해도 강북에 있는 대부분의 한강 둔치는 공원이라기보다는 길이었다. 자전거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산책로가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구간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휴일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이는 자전거도로 옆 공터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오후 내내 시간을 보냈다. 늘 바쁜 남편이지만 그래도 어린이날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연휴 기간 동안 잠깐의 시간이 생기기는 했는데, 그 시간은 늘 어버이날 행사에 쓰였다. 나는 더러 그게 심통이 나기도 했다. 번번이 아이가 소외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늙은 부모님이 사셔야 얼마나 사시겠느냐 하고 당연히 찾아뵈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는 뭐 평생 어린이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아이의 어린이 시절이 끝나는 시기와 거의 동시에 양가 어머니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다. 5월이 되자 아무런 의무도 없는 텅 빈 연휴가 찾아왔다.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마음도 같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아이와 한강에 갔다. 이번에는 함께 자전거를 타려고 따릉이 앱을 깔아 회원 등록도 마쳤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계속 통신오류라는 메시지만 떴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조금 걷기로 했다. 

오랜만에 찾은 강북 둔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명확히 구분돼 있었고, 사이의 공터들도 제법 잘 단장해 놓았다. 한강에 예술공원을 조성한다더니 이런 거였나 싶게 군데군데 조형물이 서 있었다. 어떤 것은 근사하고 어떤 것은 좀 기괴했다. 한강을 향해 무리지어 걸어 들어가는 자세로 서 있는 선홍빛 펭귄 무리 조형은 아무리 봐도 스산하고 서늘했다. 그래도 길을 강 가까이까지 이어놓고 물만 깨끗하다면 발을 담가도 좋게 난간이 달린 계단을 설치해놓은 건 좋았다. 그곳에 앉아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달리는 노인들에게로 자꾸 시선이 닿았다.  

엄마가 자전거를 배운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혼자 배우셨다는 것만 안다. 언니 집 근처 한강에 산책 갔다가 자전거를 배우는 노인들이 모여 있어 기웃거렸더니 다른 동네 사람은 안된다고 배척하더라며 오기가 나서 그 옆에서 혼자 배웠다고 했다. 그래봐야 페달 밟아 1~2m 가는 정도겠거니 했다. 그게 아버지가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시절인지, 그 전인지 아니면 그 후인지 모르겠다.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집에서 간병하던 시절, 딸들은 출근하고, 혼자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남편을 돌보고 있다가 마음이 답답할 때 한 번씩 자전거를 타러 갔는지, 그 시절이 비로소 끝난 후에 혼자 길을 달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어느 날은 혼자 옥수동에서 성산대교 아래까지 갔다고 했다. 그건 지금도 우리 남매의 미스터리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육십 노인이 가기에 너무 아득하고 먼 거리였던 것이다. 엄마가 기분 나빠하실까봐 차마 묻지는 못하고, 성산대교까지 가려고 했던 것이다, 한남대교를 성산대교로 잘못 알고 계셨던 것이다, 아니다 정말 성산대교까지 갔다로 의견이 갈렸는데 이제는 물을 수도 없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조금 울었다. 어쩌면 엄마가 당신도 모르게 거기까지 밟아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힘들어서 더는 못 가겠더라,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더 멀리, 아주 멀리 가버리고 싶으셨을 시절이었다. 그렇게 가셨대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결국에 혹은 어쩔 수 없이 되돌아왔던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알지만 여의도에서 반포 정도까지의 거리밖에 타지 못했다. 언제고 옥수동에서 성산대교까지 자전거를 타 볼 생각이다. 나는 한 번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도 엄마를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혹 그 길을 따라가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달려가고야 마는 어떤 길의 끝과 다시 되돌아오게 되는 어떤 삶의 인력을, 그 인력 안에 놓인 비애 혹은 소소한 기쁨을 말이다. 달려봐야 알겠지만 그 길에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 것 같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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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