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많고, 담력이 약하고, 가위도 잘 눌리는지라 세상 무서운 게 귀신 이야기다. 납량특집이 쏟아지는 여름에는 혼자 집에 있을 때 TV도 잘 켜지 않는다. 혹시라도 그런 유의 프로그램을 보게 될까봐 지레 겁먹어서다. 그러면서도 또 세상 좋아하는 이야기가 귀신 이야기이다. 금지된 모든 것들이 원래 유혹적인 것이기 때문일까. 나는 사실 귀신의 존재도 믿는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귀신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웃에 사는 교인과 새벽 기도에 같이 가던 중이었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였다고 했다.

갑자기 나타난 여자 둘이 엄마에게 길을 물었다고 했다. 이러저러하게 가라고 알려주고는 걷던 길을 마저 걷는데, 같이 가던 이웃이 느닷없이 웬 혼잣말이냐고 하더란다. 방금 처녀 둘이 길 물었잖소, 하고 돌아보니 아무도 없더라는 이야기. 택시 운전을 오래 했던 아버지도 귀신을 차에 태운 적이 있다고 했다. 어느 집 앞에 내려달라고 하고, 차비 가져온다고 들어가서는 영 나오지 않아 따라가 보면 제사를 지내고 있더라는 이야기는, 귀신 이야기 중에서는 고전에 속하는 흔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말도 믿는다. 실제로 그런 유의 귀신 이야기는 누군가들이 겪은 진실이 반복해서 전해진 건데, 믿지 않는 혹은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농담처럼 취급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택시를 타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 소설을 쓴 적도 있다.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소설은 아니다. 인생의 어느 한 시절, 나는 정말로 세상을 떠난 아빠를 택시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야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0월17일 (출처:경향신문DB)

귀신만 믿나. 아니다, 나는 요정도 믿고, 마녀도 믿는다. 구전으로 문학으로 소문으로 전해 온 모든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편이다. 살다 보면 실제로 그런 존재가 있을 거라고 믿어지는 그런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에게 한 번도 선물을 준 적 없는 산타클로스만 믿지 않는다.

‘마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최근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를 둘러싸고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마녀사냥’을 중단하라고 외친 기사를 꽤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가 아는 ‘마녀사냥’이란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여론몰이로 재판하는 억울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일 터인데, 나는 ‘마녀’라는 글자만 눈에 들어왔다.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마녀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로 집을 지어 유혹하는 마녀, 배가 고파 그 과자를 뜯어먹는 아이를 착취하여 제 영혼을 살찌우는 마녀, 이상한 우연인지 그게 마녀의 정체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동화 속 마녀의 저주는 대개 아이들에게로 향한다. 정확하게는 아이들을 이용하여 제 욕망을 채우는 존재로 그려진다. 국가 지원금만큼 원비를 인상하고, 그 원비로 개인의 명품을 구매하고 아이들의 급식비를 빼돌려서 치부를 하는 이들과 닮아도 어딘가 많이 닮지 않았나. 그래서 나는 ‘마녀사냥’이라는 그들의 말이 혹시 자신들에게 쏟아진 비리와 감사가 억울하다는 항변이 아니라 자신들의 진짜 정체성을 고백하는 말은 아닐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최근 방송되는 ‘악령’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도 그런 면에서 현실 세계를 다룬 드라마들보다 때때로 훨씬 더 현실적이다. <전설의 고향> 속 귀신들은 원한이라도 풀러 나왔다지만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악령’들은 품은 원한도 없다. 그저 제 속의 분노와 억울만 존재한다. 그마저도 없을 때가 많다. 현실 세계에 대입하면 그야말로 ‘묻지마 범죄’에 가깝다. 그러하니 나는 그 영혼들이 이제 내가 세상에서 마주치는 실체들과 다른 존재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한때 나는 ‘빙의’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메타포로 이해했다. 그런데 요즘은 과연 죄와 사람이 다른 것인지 헷갈린다. 이성과 마음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그래서 지금 누가 나에게 아직도 귀신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여태 그것을 보지 못했느냐 되묻기만 할 것 같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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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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