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렇지만 내 주변에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 키우고 있는 녀석들 사진을 교환해서 보기도 한다. 나 역시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들 사진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지인이 ‘맘에 상처받을 일은 없겠다’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내왔다. 자식이든 손주이든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는데 강아지들은 그럴 일이 없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왜 사람들이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같이 있으면 행복감과 편안함을 느낄까? 그것은 상대가 나를 어떻게 여길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남녀관계가 가장 좋으면서도 또 가장 불안한 관계인 이유는 늘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마음을 쓰기 때문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상대의 평가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되면 사랑하는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참으로 오묘한 존재이다. 혼자 있고 싶어하면서 또 혼자 있기를 싫어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면서 또 같이 있기를 싫어한다. 나를 주장하고 싶어하면서 또 나를 주장하기를 두려워하고, 상대의 평가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평가를 신경 쓰지 않게 되면 더 이상 그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정신적 건강함이란 이 모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축이 잘 버텨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축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상대의 평가에 흔들린다는 것은 나의 축이 확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출처:pixabay

어린아이일 때 우리는 연약할 수밖에 없다. 아직 나의 축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하는 자기 이미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남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사실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되고 싶어하는지를 안다. 다행히 부모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이 그러한 자신의 선택을 믿어주고 격려해주고 수용해주면 아이들은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린 끊임없이 그렇지 않다는 경험에 직면한다. 할 수 있다는 격려보다는 “안돼”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그러니 내가 추구하는 게 좋은 것인지,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한 의심이 생겨난다.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가 더 커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직접 경험하는 것들에 의해 스스로 생각하는 이미지가 더 커진다. 즉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이 보는 나보다는 내가 보는 나의 영역이 더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이 건강해야 한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죽는 날까지 나와 같이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므로 그런 나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다음은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내 인생의 리더는 바로 나 자신이므로 나의 변화를 주도할 사람도 바로 나라는 생각이야말로 흔들림 많은 인생에서 나를 붙들어주는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버팀목은 기본적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토양에서 싹튼다는 사실도 알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나의 친구이고 내 인생의 리더는 바로 나이며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주체도 바로 나라는 생각의 통합이다. 그런 통합을 가질 때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을 수용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처럼 소중한 나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즉 나의 삶은 나 자신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당당히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실제로 우리가 여러 소소한 부분에서 자신에게 얼마나 야박한지를 안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통합을 이루려면 일단 먼저 나 한 사람을 사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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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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