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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소환되는 1994년에 나는 대학 졸업반이었다. 여름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출근시간은 오전 7시였는데, 퇴근시간도 없고, 휴일도 없었다.

내가 맡은 일은 굉장히 다양하고 많았지만 한 단어로 요약하면 심부름이었다. 나는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에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위를 뛰어다니거나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다. 그늘도 없는 시내 한복판에 내리꽂히던 하얗고 뜨거운 햇빛이 기억난다. 그래도 더웠던 기억은 없다. 기업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본 일은 처음이었다.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서 모든 것이 연습 같았다. 나는 지나치게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나를 본 사람마다 정말 좋은 회사에 들어갈 거라고, 못 들어가면 우리라도 소개시켜줄 거라고 장담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취업 전문 강좌도 들으러 다녔다. 퇴근도 휴일도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시간을 얻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갔다. 밥을 먹을 시간이 모자라서 강의실 옆에 있는 매점에서 뜨거운 라면 한 그릇을 급하게 사 먹고 수업에 들어갔는데, 면발을 호르르 삼킬 때마다 애써 외면했던 피로가 비로소 온몸에 퍼지는 기분이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밤에도 식지 않는 열기를 되밟아 회사로 들어가면서 나는 한 번도 덥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우면 더울수록 오히려 전사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 정도 더위 별거 아니고, 내 앞에 찾아올 미래가 뭐든 다 맞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손 선풍기로 더위 식히는 노인 온도계가 32도를 가리킨 23일 오후 서울 시내에서 한 노인이 손 선풍기를 들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가장 크게 고통받는 사람은 노약자들, 특히 홀로 사는 빈곤층 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이다. 연합뉴스

그래서 내게 가장 더웠던 여름은 2000년이다. 설 지나고 며칠 만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가 끝내 식물인간이 된 해이다. 종합병원에서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여름이 올 무렵 한방병원으로 옮겼다. 그 몇 달 동안 엄마가 혼자 아빠를 지켰다. 지치고 예민해진 엄마는 우리는 물론 의료진과도 싸웠다. 의사는 엄마가 화를 내면 꼭 보호자를 호출했다. 그때마다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는데, 하루는 호출을 받고 불려 가는 길에 엄마를 봤다. 조금 전까지 의사가 놓은 침을 다 안 뽑아서 환자 몸에 남았다고 성질을 부렸다던 엄마가 노란 양은냄비 하나를 들고 가파른 언덕을 걷고 있었다. 그 언덕을 넘어 300~400m 떨어진 곳에 대형 설렁탕집이 있었다. 의식이 없으니 씹지도 못해 주사기로 음식을 공급하는 상황이었는데, 엄마는 기력 달리면 못 일어난다고 그 집에서 종종 고기 국물을 사다가 아빠에게 먹였다. 엄마가 걸어가는 길은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이었다. 양은냄비에 부딪힌 햇살이 통통 튀어올랐다. 그 빛에 눈이 찔린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를 부르지도 못하고 그 맞은편에서 천천히 같이 걸었다. 엄마라도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싸우러 가는 길이었다. 아니, 싸우고 돌아오던 길이었나. 그 길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겠다. 덥기만 무척 더웠다. 살면서 그렇게 더웠던 날이 없다.

너무 덥고, 너무 뜨거워서 급기야 가슴에 체기 같은 게 올라왔다. 더위를 먹은 거라고 했다. 더위를 먹는 게 그런 거라는 걸 그날 알았다. 그리고 또 그날 나는 알았다. 더위는 불행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재앙이라는 것을. 추위가 그러하듯 지독한 더위도 체험이나 경험이 아니라 누적된 절망,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포기에서 비롯된다. 어떤 이들에게 더위는, 그리고 추위는 계절이 지나가면 비로소 벗어나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2018년의 더위는 온도계에 기록된 수치로도 이미 해마다 소환되던 1994년의 더위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온도계에 기록된 수치만 그 더위를 넘어선 것일까. 해결되지 않는 실업과 증가하는 가계부채, 난무하는 혐오의 언어들은 어느 정도의 수치일까. 이제는 우리의 슬픔이 된 진보정치인이 언급했던 6411번 버스를 타고 하루를 시작하는 노동자들에게, 또 한 번 동료의 죽음을 맞이한 대한문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여름일까. 수은주도 기록적인데 절망마저 더 기록적인 여름은 아니어야 할 텐데, 슬프고 두려운 폭염주의보를 이미 너무 많이 듣고 말았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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