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길에 만나는 고양이가 있다.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 몰골이 형편없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먹이를 사서 놓아주었지만 몹시 배가 고플 텐데도 다가오지 않았다. 이윽고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 줄곧 졸졸 따라오던 녀석에게 다시 먹이를 주었다. 그제야 녀석은 다가와 먹이를 다 먹어 치우더니 곧바로 사라졌다. 그 후로 매일 가게에 들러 고양이 먹이를 사기 시작했고 늘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런데 서너 달이 지나자 녀석의 모습이 놀랍게 달라졌다. 온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매혹적인 자태로 바뀐 것이다. 내가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것 같아 흐뭇했다.

언젠가는 새벽 강의가 있어 이틀 만에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러자 녀석은 먼 발치에서 날 보자마자 시선을 홱 외면했다. 왜 그동안 모습을 안 보였느냐고 따지는 품새였다. 그러고도 서너 달이 더 지나서야 녀석은 내가 아주 잠깐 만지는 정도의 터치(?)를 허용했다. 그 후 본격적인 ‘밀당’이 시작됐고 요즘 들어서야 녀석은 내가 나타나면 먼저 다가와 아는 체를 한다. 그러다가 제 볼일이 있으면 언제 널 알았냐는 듯이 외면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때마다 내 심정은 녀석과 아주 제대로 ‘썸’을 타는 느낌이다. 

그러던 중에 문득 상대방이 고양이가 아니고 사람이라도 내가 단순히 썸을 타는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렇지 않을 터였다. 만약 내가 그처럼 공들인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그 고양이처럼 나왔다면 난 분명 엄청나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제대로 된 인간관계란 어떠해야 할까 하는 기본적인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예컨대, ㄱ씨는 아는 사람이 많기로 장안에 손꼽힌다. 잘나갈 때는 눈도장 한 번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모든 인간관계를 다 자신의 편익에 맞추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결국 그가 자신의 위치에서 물러났을 때 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편 ㄴ씨는 처음부터 그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 역시 상대방에 대해 마찬가지였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가 생각하는 것도 깊고 인간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가 지나치게 냉담하다고 흉을 봤다. 하지만 그의 지론은 분명했다. 가까운 사람들과는 자주 못 만나도 그냥 생각만 해도 좋은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니 언제 만나도 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만나서 불편한 사람들과는 그 만남을 최소화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ㄷ씨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지만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만남을 갖지 않았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특성상 퇴근 후에 연구할 것도 많고 자기는 사람들을 만나면 쉬이 피곤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세 사람의 사례는 각자의 얼굴이 다른 것처럼 사람들이 선호하는 인간관계의 스타일 역시 다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그 타입을 나누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고, 처음에는 사교적이지만 오히려 친해지면 더 이상 친밀한 관계를 회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어느 쪽이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인지 규정하기는 힘들다. 다만 정신의학적으로는 인간관계에 대해 친밀함을 추구하면서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혼자 있고, 적극적으로 자기가 주장해야 할 때는 주장하고, 남의 의견을 따라야 할 때는 또 적절하게 타협할 줄 안다면 그는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때와 장소에 따라 알맞은 옷차림을 하듯이 자기가 처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인간관계의 해법인 셈이다.  

물론 그런 해법을 하루아침에 내 것으로 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관계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만큼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고양이와 썸을 타면서 느낀 단상이라기엔 좀 무거울 수 있지만 날이 갈수록 인간관계는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양창순 |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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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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