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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수작인 인도 영화 <화이트 타이거>는 요즘 말로 뼈를 때리는 잔혹극이다. 피와 살점이 난무해서가 아니다. 잔혹한 기득권자, 좌파를 가장한 부패한 권력자, 비천한 자, 비겁한 지식인 모두의 추악함이 한 치의 관용 없이 날것으로 드러나서다. 은유와 풍자가 버무려진 <기생충>은 차라리 낭만적이었다고 할 만큼, 닮은 듯 다른 결을 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발람은 인도의 최하층민이다. 좀 더 나은 인생을 꿈꾸지만 공고한 신분사회 속에서의 삶은 가혹하기만 하다. 무능하고 속물적인 가족들은 도움은커녕 발목만 잡는다. 타고난 영리함으로 기회를 잡아 부호 집안에 기사로 들어가는데, 그들이 발람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 정서로는 참고 보기 힘들 만큼 모욕적이고 폭력적이다. 계급사회에 길들여져 당연히 감수하는 발람 주위에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어려서부터 미국 사회에서 생활해온 둘째 아들 아쇽과 아내다. 두 사람은 발람을 대하는 집안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태도에 분노하며 그를 친구처럼 대하려고 애쓴다. 굴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인생을 개척하라는 진심 어린 조언도 한다.

그러나 급박한 시기가 오자 그들 역시 태생적 한계를 드러내며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발람은 더 큰 환멸을 느낀다. 신분사회의 본질을 깨달은 그가 잔인하게 파괴하는 대상은 늘 냉혹했던 이들이 아니라 일부분 인간적 관계를 유지했던 아쇽이다. 이후 발람의 삶은 아쇽 부부의 조언대로 180도 변화한다.

<화이트 타이거>도 기생충만큼 다양한 시선으로 읽힐 수 있다. 사회적 위치나 경험에 따라 감정이입되는 인물도 다를 것이다. 카스트 제도가 아직 유지되는 인도와 대한민국의 현실은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인간사의 본질을 다루어서인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세상엔 사회적 약속이나 약자에 대해 큰 가책 없이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자세를 보이는 이들이 있고, 가끔은 흔들리고 한계를 보이지만 다시 자신을 성찰하는 이들이 있다. 초등학생도 무엇이 더 나쁜지는 안다. 그럼에도 역사와 현실 속 무수한 인간사에서 약자와 강자 공통으로 쉽게 공격하는 것은 ‘흔들리는 이들’이다. 드러내놓고 악한 것보다 위선적이고 무능해 보인다는 이유다. 상대적인 잣대도, 절대적인 잣대도 아닌, 그저 조금 더 만만한 자에게 던져지는 사회적 돌팔매질들을 보고 듣고 있노라면, 당혹스럽고 서글펐던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고맙고 좋은 기억이 많은 회사 생활을 했지만, 힘들었던 시기가 있다. 비정규직 담당자로 일했을 때다. 진심으로 지위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큰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과 상급자의 마인드가 닫혀 있는 경우, 그들의 취약한 입장을 대변하려 노력할수록 평소 잘 지내던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와 관계가 힘들어졌다. 정규직들은 귀찮아했고, 비정규직들은 무관심한 이들에게 가져야 할 섭섭한 마음과 분노의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그들에게 일말의 애정도 없는 이들의 의례적인 친절에는 감복하면서도, 조직과 부딪히다 깨지고 지치는 나의 모습엔 실망감과 불만을 토로했다. 나의 부족함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으나 보람 이상으로 상처가 컸다. 무엇보다 강자의 오만만큼, 기대에 못미치는 선의보다는 군림하는 힘을 선망하고 순종하는 약자의 생리도 깨달았던 시간이다. 냉정한 며느리나 무심한 아들보다, 늘 함께하는 며느리나 딸자식을 더 힐난하는 부모들도 비슷할 것이다.

솔직하게 부패하거나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보다, 그런 세상에서 실수하고 때로 실패하는 것은 무능한 것일까. 가끔은 흔들리며 자신의 삶도 고민하는 것은 그다지도 위선적인 것일까. 세상이 개인주의로 치닫는 이유는, 악이나 관습과 싸우는 것이 두려워서라기보다 함께하고자 했던 이들의 실망과 비난, 등 돌리는 모습에 상처받는 이유도 크지 않을까.

박선화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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