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공감이라는 말처럼 크게 성공한 심리학 용어도 없을 것이다. 원래는 그리 흔히 쓰던 말이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니 여섯 번 등장한다. 한 번은 한명회가 명나라에서 성종의 표문을 올리며 황제의 은덕을 찬양할 때 쓰였다. 나머지는 임금의 성덕에 군신이 같이 감격한다며 쓰였다.

혹시 개화 이후 많이 쓰게 된 것일까? 옛 신문을 검색해도 잘 찾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1941년 12월9일 매일신보에 실린 ‘제국을 절대 지지, 독일조야 만강의 공감’ 제하의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독일 국민이 일본 제국을 지지하며 가슴 벅차게 공감한다는 내용이다. 기사 이틀 전, 진주만 공습이 있었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예전에는 공감이란 말을 그다지 흔히 쓰지 않았다. 노래 가사에 감동할 때나 썼던 것 같다. 정신의학을 시작하며 공감의 심리를 배웠지만, 이처럼 대중화될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온갖 곳에 남용된다. 우리 동네엔 공감 떡집도 있고, 공감 치킨도 있다. 공감대 아파트도 있다. 바야흐로 공감의 시대다. 한때는 재건이나 현대, 부흥이란 말이 인기를 끌었고, 미래, 융합, 세계화 등의 용어도 히트한 적이 있다. 당시 가장 절박했던 가치다. 공감도 마찬가지다. 동시대인의 마음에 뭔가 깊이 와닿는 것이 있으니 인기를 얻는다. 그렇지 않다면 갈비 공감이나 공감 떡볶이처럼 썩 공감 가지 않는 상호가 등장할 리 없다.

현대인은 공감에 굶주려 있는 것일까? 콘라트 로렌츠는 밀집 도시에 사는 현대인일수록 오히려 서로 멀어지며 고립된다고 하였다. 하긴 전통사회에서는 공감이라는 말이 그리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과 친지는 물론이고, 부락민 모두 서로의 생각을 항상 넘치도록 나누었을 테니 말이다. 구중궁궐에 갇힌 임금에게나 ‘백성이 성덕에 공감한다’라고 꼭 집어 올려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공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정서적 공감이다. 타인의 기쁨이나 슬픔을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상태다. 자동으로 일어날 뿐 아니라 대부분 어렵지 않게 경험한다. 주관적인 감정적 전염이다. 둘째, 인지적 공감이다. 타인의 입장이나 형편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제법 애를 써야 가능하다. 빈자에게 부자를, 부자에게 빈자를 공감해보라고 해보자. 부러움이나 연민의 감정이 앞서서 제대로 공감하기 어렵다. 인지적 공감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추상적 과정이다.

정서적으로 전혀 공감되지 않는 대상에게 인지적으로 공감해본 적 있는가? 정신과 전공의 때 그런 훈련을 받는다. 사실 환자의 과도한 기분이나 엉뚱한 행동, 망상에 금방 공감하긴 어렵다. 물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진짜 공감은 아니다. 잘해야 동정심이다. 도무지 납득되지 않지만, 그런데도 상대를 이해해내려는 인지적 공감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끄는 공감은 전자의 공감이다. 자동으로 마음이 끌리는 대상이나 주장에 대해서 ‘공감’한다면서, 그렇지 않은 자를 ‘공감 능력이 없다’며 나무란다. 하지만 이건 공감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입장 차이에 불과하다. 마네의 그림을 보며 감탄하는 친구가 왜 감동하지 않느냐며 혀를 끌끌 찬다. 나는 모네를 더 좋아하는데. 

그러니 상대가 공감 능력이 없다며 매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공감 능력 부족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저 상대를 비난하기 위해서 ‘공감’이라는 힙한 용어를 덧씌워 몰아세우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서로 공감하는 우리 편’과 ‘공감할 수 없는 상대편’을 가르는 경계의 언어로 잘못 쓰이고 있다.

공감은 같은 생각을 가진 무리가 쌓는 확고한 감정적 성벽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잇는 가느다란 인지적 교량이다. ‘너는 도대체 왜 공감하지 못하느냐’라는 말이야말로 얼마나 ‘비공감적’인가.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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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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