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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문재인 정부가 처음 ‘공론화위원회’라는 의사결정 방식을 제시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숙의민주주의 실험이라니. 여론도 호의적이었다. 평화롭고 타협적인 문제해결 방식이기 때문이었을까. 시민들이 평등한 주체로 참여해 공정하게 의견을 나눠 정의로운 결론을 내리는 ‘문제해결의 만능열쇠’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유일한 문제해결 방식이었던 박근혜 정부의 잔상이 아직 가시기 전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첫 실험이었던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이후 공론화위원회 모델은 전국으로 확산돼 왔다. 주로 지역에서 첨예하게 대립해 온 이슈들이 의제로 오르고 있다. 그런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인천에서는 자체 생활쓰레기 매립지 건설, 제주에서는 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경주에서는 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증설과 관련하여 각각 공론화위원회를 개최했는데, 위원회 구성 방식과 여론조사 문항 설정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결국 규칙을 설정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두고 갈등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정부 주도로 실시된 처음 두 번의 공론화위원회도 ‘완전한 민주주의’라고 보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앞서 지역 사례들이 ‘공론화 방법’의 문제라면, 정부 주도였던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와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는 ‘의제 설정’의 문제였다. 당초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에 대해서는 공사 중단을, 대입제도 개편에 대해서는 전형 단순화 및 수시전형 단계적 축소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나름대로 분명한 입장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를 공론화위원회에 부침으로써 ‘정치적 책임’이 실험대에 올랐다. 신고리 5·6호기를 두고 보자면, 공론화의 결과로 공사가 재개됐으니 문재인 정부는 공약 달성에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공약 달성 실패를 보고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표정은 오히려 밝았다. “한층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줬다”며 반겼다. 공사중단 공약을 보고 투표한 국민들에겐 사과 메시지가 아닌 “권고를 존중하고 대승적으로 수용해달라”는 일방적인 부탁만이 돌아왔다. 대입제도 개편의 경우는 더 혼란스럽다. 2018년 8월 ‘정시 30% 이상’이라는 공론화 결과가 나왔지만, 1년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다가 ‘조국 사태’를 경유하며 ‘정시 40% 이상’으로 비율을 키웠다. “권고를 존중해달라”던 신고리 5·6호기 당시의 부탁을 스스로 저버린 꼴이다.

공론화위원회 모델이 ‘성숙한 민주주의’로 추켜세워진 데 반해, 처음 두 번의 공론화 이후 중앙 이슈를 갖고 진행된 공론화위원회는 없었다. 첨예하게 대립된 이슈가 없어서 그랬을까? 그럴 리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공론화 과정도 밟아보지 못한 채 백지화됐고, 부동산 정책이나 공공의료 확대 등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대형 이슈들에 대해 공론화위원회에 부친다는 소식은 소문으로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일은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지난 3년의 실험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공론화하는가’의 문제가 공론화위원회의 핵심이며, 이는 다시 권력의 문제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줬을 뿐이다. 결국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실험’이라는 형용모순이 다다를 수밖에 없는 결말 아닐까.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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