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정말 좋은 글이 무엇인지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어떤 글을 읽고 참 좋은 글이라며 감탄하는 경우는 많지만 왜 좋은 글인지를 설명해야 한다면 곤혹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게 하나 있다면 좋은 글을 읽고 나면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든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훌륭한 글이라 해도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저만큼 옮겨놓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처럼 훌륭한 글이 있다면 사람이 쓴 게 아니라고 해도 좋을 테다. 어쨌거나 마음을 움직일 만큼 좋은 글들은 부드럽게 우리 내면으로 스며들어와서는 우리의 마음을 어느 쪽으로든 한 뼘 정도 움직여 놓고 가버린다. 

이 사소한 움직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중도, 중용처럼 우리가 익히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삶의 태도들이 실제로 실현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여겨져서이다. 과유불급은 넘치는 것과 모자라는 게 똑같다는 뜻이기도 하고 중도를 지키며 중용의 미덕을 발휘하는 게 중요함을 암시적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만 들으면 어린 시절의 일화가 하나 떠오른다. 6남매의 장녀인 어머니는 당신의 동기들과는 무척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어머니의 고향은 고창이고 결혼해서 살게 된 곳은 정읍인데 고창이나 정읍이나 촌구석인 건 매한가지였지만 당신의 다른 형제들은 모두 서울에서 성가하여 살았던 까닭에 아무래도 신세가 비교되어 마음이 울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큰딸이 보고 싶으면 바람처럼 왔다가 겨우 하룻밤 주무시다 가시곤 했다. 외할아버지는 시골 동네에서 촌부로 나이 들어가는 큰딸이 안타까워 오래 머물지 못한 거였고 어머니는 사는 꼴을 속속들이 내비쳐 당신 아버지를 마음 아프게 할 수 없어 오래 붙들지 못한 거였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고 나면 어머니는 언제나 남몰래 눈물바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이었다. 외할머니가 혼자 찾아온다는 기별이 있었다. 그런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기에 어머니는 무척 들떠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등장하게 된다. 아버지는 맏사위답게 장모님을 모시고 싶었지만 달리 해드릴 일이 없었으므로 연로하신 장모님이 머무는 동안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고된 몸을 지지면 좋겠다 싶었다. 장인어른은 바람처럼 왔다 한숨만 내쉬다 가곤 했던 터라 모실 겨를조차 없었지만 장모님이 찾아오는 건 처음인 데다 며칠 머물 계획이라 아버지도 잔뜩 긴장했던 거였다. 외할머니가 오기 하루 전날이었다. 아버지는 평소라면 드나들 생각도 안 하던 부엌에 들어가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군불을 땠다. 말이 군불이지 아궁이 속으로 끝도 없이 솔가리와 장작을 밀어 넣었다. 이러다 솥이 다 녹고 구들장이 타 없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난생처음 후끈거리다 못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방에서 잠을 잤는데 새벽녘에 우리 식구 모두 깨어나 난리를 피워야 했다.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났고 불을 켜서 확인해보니 바닥에 깔아둔 요가 여기저기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중이었다. 부리나케 요와 이불을 밖으로 던졌다. 그러고 나니 처참한 방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나 불을 땠는지 아랫목이 그냥 그을린 상태가 아니라 장판이 여기저기 다 타버린 거였다. 너무 뜨거워서 발바닥이 델 지경이었다. 날이 샐 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장판을 여기저기 들춰 주전자로 조금씩 물을 흘려 넣으면서 물이 마르면 다시 흘려 넣기를 되풀이해야 했다. 그날 집에 오신 외할머니는 끌탕을 했다. 살다살다 장판이 이렇게 타버린 건 처음 본다고 했다. 과유불급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나는 외할머니의 마음이 아주 조금 움직인 걸 보았다. 한심하고 무능한 맏사위지만 한심하고 무능해도 괜찮다는 쪽으로 한 뼘쯤 움직인 것을…. 올바른 중간이란 반드시 중간이라 여겨지는 어딘가를 점유할 때만 가능한 건 아닐 테다. 걸을 때마다 무게중심이 이동하듯 지금 당장은 모자라거나 넘쳐보일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느 한순간 절묘하게 무게중심이 되어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니 말이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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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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