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조금 늦게 식당에 들어갔더니 이미 상이 차려져 있었고 다들 막 식사를 하는 참이었다. 나는 후배 옆 빈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달게 밥을 먹었다. 수저를 내려놓고서야 내 옆의 후배가 찌개를 전혀 먹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넌 왜 찌개를 안 먹니? 하고 묻다가 퍼뜩 깨달았다. 뚝배기로 나온 찌개는 두 사람에 하나씩이었다. 그걸 내 찌개인 줄만 알고 나 혼자서 다 퍼먹어 버렸던 거다. 멋쩍고 부끄러웠다. 식사 자리에 조금 늦어 차림상의 면모를 한눈에 알아채지 못한 탓도 있었다지만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피할 수 있는 실수이기도 했다. 이미 식사는 끝나버렸고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자 후배는 선배가 맛있게 먹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 말에 심사가 복잡해졌다. 비록 나는 먹지 못했으나 선배가 맛있게 먹었으니, 그게 누구든 맛있게 먹은 사람이 있었으니 다 괜찮다는 후배의 넉넉함에 비하자면 나는 얼마나 초라한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이런 실수, 정말 실수라면 그나마 다행일 이런 일들을 여전히 겪는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후배가 그냥 괜찮다고 말했다면 나는 속으로 후배가 전혀 괜찮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언제까지나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선배가 맛있게 먹었으니 괜찮다는 말은 괜찮다는 말에 하나의 설명이 덧붙여진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괜찮은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끔 하는 말이었고 실수를 저지른 이의 마음까지 다독이고 배려하는 힘을 지닌 말이었다. 

배려란 그냥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 어떤 생각을 할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하고 사소한 일도 무겁게 여길 줄 알아야 가능한 태도다.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게 여의치 않은 일이라는 건 사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알았다. 

그 시절 우리 집은 반쯤 찢어지게 가난했고 바다와 먼 내륙 지역이라 아주 가끔 밥상에 생선구이가 올라왔다. 그런 날 밥상을 물리고 나면 어머니는 부엌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생선대가리밖에 남지 않은 그걸 드셨다. 오래전부터 보아왔던 터라 무심히 지나쳤는데 어느 날인가는 제법 머리가 굵었다는 티를 내고 싶었는지 어머니에게 왜 그걸 드시는지 물었다. 그러자 당신은 원래 생선대가리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마도 어두육미 운운하며 수긍했던 것 같다. 그다음 날이었다. 동네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농담을 듣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어머니 생신이라며 돼지비계를 잔뜩 사더랴. 왜 살코기를 안 사고 비계만 사냐고 물으니깐 우리 어머니는 원래 고기 안 좋아해요, 비계만 좋아해요 하더랴. 참말로 이런 바보가 또 어디 있겄냐. 자식 먹이려고 살코기 싫다 하신 건 모르고 우리 어머니는 비계만 좋아하신다니.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는데 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농담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생선대가리를 좋아하시는구나 했던 내가 바로 어머니는 비계만 좋아한다고 했던 그 사람임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동네 형은 내 속도 모르고 계속 말했다. 그런 불상놈의 자식, 남의 속은 눈곱만큼도 헤아리지 못하고 저만 아는 자식, 세상에 누군들 그 좋은 살코기를 마다하고 비계만 찾겠냐, 그렇게 살면 세상 헛산 거다,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동네 형이 다 알고서 나를 나무라는 것만 같았다.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알 수도 있었을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나는 아마도 사색이 되었을 거다.

세월이 흐른 뒤 어머니가 바다에서 난 것들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생선을 굽고 살을 발라 자식 입에 넣어주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당신에게 물었다. 그 좋아하던 생선을 어찌 참으셨대요? 당신은 이렇게 답했다. 네가 하도 맛나게 먹은 게 아무렇지도 않았어야. 맛있게 드셨으니 괜찮아요. 살면서 나도 이런 말 한번쯤 누군가에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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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