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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 이미지 안에는 아직도 전근대적 절대권력의 망령이 서려 있다. 정치인들은 국가를 오직 권력으로만 이해하며, 통치자는 그 위에 군림하는 군주쯤으로 여긴다. 그 부인을 국모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악의 축으로 여긴다. 또한 재벌과 결탁하며 사회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간다. 여기에 검찰과 경찰을 장악함으로써 일찍이 알투세가 말한 ‘억압적 국가장치’를 완성한다.

그런 정치에게도 언론은 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이번 MBC 사태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이 잘못되었거나 ‘속이 좁아서’ 생긴 일이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언론을 적극적으로 길들이고자 하는 현 정부의 다급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이라고 본다. 혹은 현 정부가 권력과 국가를 어떤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육은 언론만큼이나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는 데 필요한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며, 그런 점에서 내 관심은 현 정부가 어떻게 ‘교육 길들이기’에 나서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정치와 언론, 그리고 정치와 교육 사이의 거리 두기와 긴장관계를 존중하겠지만, 만일 오직 ‘그들만의 리그’를 재생산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 그 체제를 장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일찍이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현대사회를 기능적으로 자기조직화하면서 분화하는 각종 사회체계들의 연합으로 규정했고, 그 가운데 교육체계 역시 정치체계나 경제체계, 대중매체체계 등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기능적 전문성에 의해 자기준거적으로 조직화되어 가는 체계로 보았다. 말하자면 교육은 본질적으로 정치나 경제 등에 종속된 사회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가 교육을 철저하게 정치-경제 동맹의 하부 기구로 전락시키려는 의도는 여러 가지 징후를 통해 확인된다. 국가교육위원장에 교육전문성도 없고 친일미화와 역사교과서 우경화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분을 임명하였다. “교육부는 경제부처”라는 인식 아래 시장주의경제학자를 교육부 장관에 인선하였다. 최근 발표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노동자 개념을 삭제하고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대체하였다.

교육학자인 내가 볼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무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개발주의적 국가-자본 시스템의 틈새에 낀 채로 얼마나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국가는 교육을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하는 선발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과 지방처럼 사회양극화의 대립 지점들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모든 에너지, 자원, 기회를 활용해서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동하려고 한다. 반면 교육은 그사이를 가로막고 소수만을 통과시키는 깔때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비유하면 엄청난 질량들이 몰려들지만 통과할 수 있는 길의 폭은 한정되어 있고, 그 결과 교육이라는 터널에는 통제불능의 밀도와 압력이 쌓이게 된다. 딱 봐도 한눈에 ‘이태원 골목길’의 형상이다.

우리는 이태원 사태를 ‘참사’라고 부르지만 매년 300명 가까이 자살하는 아이들은 그저 ‘일상’으로 치부한다. 매년 2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자살을 시도한다. 교육이라는 풍선은 이미 곳곳에서 압력을 못 이기고 터지고 있다. 압력과 밀도를 낮추는 일이 시급하다. 나는 이것을 국가위기상황으로 규정한다. 교육의 위험상황은 재난안전법상의 사회재난에 해당하거나 심지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으로까지 검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경쟁을 지향하는 한국의 교육정책은 세계적 흐름과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다. 유네스코가 올해 발간한 ‘교육의 미래 보고서’는 교육을 산업의 일부로 보는 관점을 버리고 생태적 관점으로 전환하라고 말한다. 너무 오랫동안 경제성장 위주의 근대적 개발 패러다임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교육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삶의 균형과 상호의존적인 지구 생태계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한다. 교육의 사적 이익으로 야기되는 과잉경쟁을 포기하고 교육을 공동재로 재의미화하도록 권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 한가한 공자님 말씀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지속-불-가능성’이라는 재난상황으로 본다면, 유네스코의 이 주장은 오히려 시급하고 적합한 해결책으로 보일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지구생태를 위해 생태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처럼 교육의 대전환은 이제 기다릴 시간이 없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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