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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만드는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지어진 지 4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을 개축 또는 리모델링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하지만 공사 기간 동안 운동장에 설치하기로 한 이동형 임시 교실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1~2년의 공사 기간 동안 전학을 가야 하는 경우도 있어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 지정 후 의견 수렴에 나서다 보니 혼란을 가중시킨 측면이 크다.

다들 노후 건물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공사 기간 동안의 불이익을 감수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일부 학부모들은 ‘지역과 학교 시설 공유’ 등 미래학교 사업 내용이 혁신학교와 비슷하다며 결국은 혁신학교가 아니냐고 반발하기도 한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국가가 생각하는 미래와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미래가 다르다. 개인 수준의 교육과 국가 수준 교육의 목표를 조정하는 것이 교육행정의 기술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기기로 공부한 결과가 많은 학생들의 기초학력 미달, 학습격차의 확대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스마트하지 못한 정책 집행 과정의 문제는 개선하면 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미래학교의 구상에 대한 합의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그린’ ‘스마트’라는 이름이 미래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모든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나눠주고, 교과서를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바꾸고, 분필가루 날리는 칠판 대신 전자 칠판을 쓴다고 교육의 질이 달라질까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에어컨 시설이 완비된 교실에서 첨단 기자재를 동원해 ‘스마트한’ 수업을 한다 해도 아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교육은 공염불일 따름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시도된 알트스쿨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스마트’한 것을 높이 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세기의 구질구질함에 대한 반작용일까?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스마트교육은 최신 기기를 소비해주는 얼리어답터를 양산해내는 데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디지털 시대의 창조적인 인재를 길러내고자 한다면 스마트 칠판보다 오히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학교교육의 문제는 스마트하지 못한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창의성은 모니터 속의 윈도 창이 아니라 바깥으로 열린 창에서 살아날 가능성이 더 높다. 성장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의도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효용성만 있는 공간은 숨이 막힌다. 마찬가지로 효용성으로 가득 차 숨 쉴 틈이 없는 시간은 아이들을 질식시킨다. 학교를 마치고도 학원을 몇 군데나 뺑뺑이 돌아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텅 비어 있는 시간이 없다. 빈틈없이 빡빡하게 기획되어 있는 시간 속에서는 상상력도 주체성도 생겨나기 어렵다. 시간을 스스로 꾸려보지 못하면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갈 힘을 기를 수 없다. 텅 빈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끊임없이 어딘가로 도피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교육의 질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첨단 시설이 있는 공간보다 좋은 사람이 있는 공간을 더 매력적으로 느낄 것이다. 아이들은 마음 맞는 친구가 있으면 웬만큼 이상한 학교도 견뎌낸다. 거기에 좋은 교사가 있으면 학교는 오고 싶은 곳이 된다. 게다가 시설까지 좋으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아무리 좋은 시설도 좋은 친구와 선생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인간의 DNA가 달라지지 않는 한 이는 미래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움과 성장은 친구들과 교사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난다. 첨단 기자재와 시설은 보조재일 뿐이다. 상호작용이 더 활발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미래학교의 방향이어야 한다.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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