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외곽의 산청 인근에서 흐드러진 히어리 군락을 조사한 뒤 구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수유 축제가 벌어지는 원좌마을을 찾았다. 지리(智異)의 훤칠한 이마 아래로 내리닫는 널찍한 들판에 자리한 마을이다. 올해의 산수유 꽃은 바로 오늘이 절정이라서 한적했던 골목이 번화한 거리처럼 북적댄다. 모처럼 속마음을 저 나무처럼 활짝 터뜨리고 싶어 안달이 난 상춘객들. 돌담 아래 길목에는 할머니들이 쑥, 도라지, 머위 등등의 봄나물로 구색을 갖춘 임시가게를 열었다.

물론 산수유 마을에는 산수유가 많았다. 마을의 입구에서 노란 물감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흠뻑 든다. 산수유가 층층나무과에 속한다는 사실에 유념하면서 산수유 마을 풍경을 일별해 본다. 파란 하늘에 비행기의 흔적이 땅속을 쏜살같이 더듬는 두더지 자국처럼 뚜렷하다. 저 하늘과 맞닿은 곳에는 장엄한 지리산의 능선이 뚜렷하다. 바로 한 칸 아래에는 기쁜 혹은 슬픈 소식을 전하는 전깃줄이 윙윙윙 뻗어나간다. 그리고 작은 텃밭에는 두더지의 자취를 지우며 새로 두둑을 세우고 비닐로 덮어놓았다. 무슨 맛있는 씨를 뿌려놓았는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자라나는 채소들.

봄빛이 휘황한 시멘트 길을 걸어 동네 한 바퀴를 하다가 문득 안 사실이 있다. 원좌마을에는 의외로 무덤이 많았다. 밭은 물론 집 근처에도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주변에 무질서한 묘지 조성으로 인하여….” 구례군수 명의의 안내판이 있을 정도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된장가게를 운영하시는 분께 무덤에 대해 물었더니 한마디 해주신다. 여긴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죠. 무덤? 하이고 무덤이 우리보다 먼저재. 무덤 사이로 집이 들어서고 자투리땅을 개간한 것이라요. 또 무덤을 만났다. 그 흔한 석물은 없고 산수유로 둘러싸인 무덤이다. 생전의 금실을 반영하듯 둘은 마주 보는 게 아니라 저 첩첩 지리산을 배경으로 아득히 해 지는 쪽을 나란히 보고 있었다. 한 가지 사실이 더 있다. 웬만한 집에는 대문 옆에 달린 게 있다. 나중의 일을 예감하듯 둘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는 문패.

층층나무과의 산수유 그늘에서 하늘, 구름, 산, 전깃줄, 나무, 무덤, 문패로 연결되는 층층의 풍경을 오래오래 감상했다. 산수유, 층층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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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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