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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은 젠더 불평등에 대한 압박 질문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한·미 정상회담 때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 대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제목이다. 관련 동영상을 되풀이해서 보니, 불안해 보인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사실 불편해 보이기는 했다. 기자는 대선 기간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도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하는 등 대통령의 오락가락 행보를 지적했다.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내각 인선에선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의 답변은 딱 한마디였다. 아직 여성들이 장관이 될 만한 자리(그 직전의 위치)까지 올라오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말은 예외적인 몇몇 경우에만 해당하는 엉터리 답변이었다. 이를테면 경찰청장은 경찰공무원법의 규정에 따라 ‘바로 아래 하위계급’인 치안정감 중에서 임명할 수 있다. 여성 경찰청장을 임명하고 싶어도 치안정감에 이른 여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익숙한 검찰총장 같은 자리는 이런 규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검찰청법은 검찰총장 임명자격에 대해 15년 이상의 판사, 검사, 변호사 경력 정도를 규정할 뿐이다. 정부조직법도 국무총리, 부총리와 각부 장관의 역할만 규정할 뿐 별도의 임명자격을 정해두지 않았다. 그러니 대선 당시 공약한 것처럼 30대 장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장관 바로 밑의 ‘직전의 자리’라는 건 애초에 없었다. 장관 인사를 해당 부처의 차관을 지냈던 사람 중에서 고른 것도 아니었다. 장관, 차관, 청장, 처장 등 정부 고위직은 대통령이 자유롭게 임명할 수 있는 자리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는 참사라 부를 만큼 엉망이었다. 동창, 근무 인연, 같은 아파트 주민 등 주변을 맴도는 인사는 놀라웠다. 윤 대통령이 지금껏 밝힌 인사 배경은 ‘오로지 능력’이었다. 대통령 측근이면 저절로 능력이 출중해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누가 봐도 적임이라 할 만한 인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성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남성들만의 잔치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19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여성은 3명뿐이었다. 장관 인사에서 남성 편향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자, 대통령 당선인 시절의 답변은 전향적이었다. 장관급 대상자 중에는 여성이 별로 없지만, 차관급 정도에는 여성 인재들이 ‘굉장히 많다’며 ‘남성 편중’이야기가 안 나오게끔 인선이 이뤄질 거라고 했다. 그런데 차관급 인사 41명 중에서 여성은 2명에 불과했다. 더 나빠졌다. 전체 장차관 60명 가운데 여성은 겨우 5명이다. 5명조차 곧 해체하겠다는 여성가족부 장차관을 포함한 숫자다. 중요 공직자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3%. 여성 비율이 50%를 오가는 나라들에 비하면 참담한 수준이다.

국회의장단과의 만남에서 젠더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자 윤석열 대통령은 매번 그런 것처럼 전향적인 이야기를 반복한다. 여성이어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게 누적되어 어떤 여성에 대한 평가가 다른 사람보다 뒤졌다는 참모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거다. 그래서 앞으로는 공직 인사에서 여성에게 과감한 기회를 부여하겠단다. 매번 말만 이렇게 한다.

대통령의 말이 뻔한 임기응변이 아니려면, 문재인 정부에서 했던 것처럼 각료의 30%, 또는 40%를 여성으로 임명하겠다는 식으로 기준을 설정하고 지키도록 해야 한다. 목표를 정하고 억지로 노력해야만 겨우 달성할 수 있을 만큼 한국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열악하다. 어제 신임 교육부·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에서처럼 의식적으로 여성 공직자를 임명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대통령이 가진 권한이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잠시 빌려준 권한일 뿐이다. 그러니 더 엄격해야 한다.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최측근 한동훈씨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밀어붙이고, 대통령실 인사도 간첩 조작, 성추행 등 온갖 의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공직자가 모두 적임이며, 오로지 능력으로만 사람을 뽑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 공직자들도 각자 부처에서 대통령식 인사를 남발할 거다. 균형은 무너지고 친소만 남는 이상한 인사가 판치게 될 거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목격했듯이 한국처럼 잘사는 나라가 어떻게 대통령 인사에서는 이렇게 지독한 성차별을 하냐는 외국 기자의 질문이나 받으며 살게 될 거다. 이럴 때 부끄러움은 늘 국민의 몫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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