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 권리를 말합니다. 인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정부는 이런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할 책무를 가집니다. 나라 밖으로 잠시 나가보겠습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국제법이 작용합니다. 전 지구를 아울러 국제법이라고 부를 만한 실체는 1차 세계대전 후에 생겨납니다. 끔찍한 전쟁을 겪고 나서야 국제법 관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는 인권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국가 간 연맹이 느슨했고, 여전히 식민지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상황이 달라집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전후방 구분도 없이 도시 전체가 격전지가 되어 버렸고, 무기 성능 향상으로 민간인 피해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나치 정권은 국가의 이름을 걸고 홀로코스트를 자행합니다. 그 끔찍한 상황을 보고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국제법이 개인의 인권 보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을 보호하자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누구든 인간으로서 국가와 국제사회의 부당한 간섭 없이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고, 그런 권리가 침해되면 개인이 인권을 걸고 자기의 이름으로 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유엔은 2005년 그 확인을 위한 결의를 합니다. ‘Basic Principles and Guidelines on the Right to a Remedy and Reparation for Victims of Gros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 and Seriou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약칭: 피해자 구제권리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라는 결의입니다.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은 국가나 법인, 개인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 청구권을 가진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결의는 그때까지 확립된 국제법상 개인 권리에 관한 법리를 집대성한 문서로 ‘피해자 권리장전’으로 불립니다.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으니까 독일과 일본도 당연히 찬성했습니다. 독일은 이런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정당 성향에 상관없이 누가 총리가 되어도 희생자 앞에 무릎을 꿇고 헌화하면서 사과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인권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그 흐름을 말씀 드렸습니다. 국제기구 근무 경험을 가진 동료 판사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잠시 질문 드리겠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대신 포기할 수 있나요? 질문을 약간 바꿔서, 인권에 부당한 침해를 받은 국민이 배상청구를 하면 국가가 그 청구를 못하게 막을 수 있나요? 법률 관계는 개인과 기업, 개인과 국가, 국가와 국가 간에 모두 성립할 수 있고, 이들 법률 관계는 서로 간섭하지 않습니다. 서로 간섭할 수 있다고 하면, 특히나 국가가 개인의 권리 행사를 대신할 수 있다거나 포기시킬 수 있다고 하면, 그런 체제는 전체주의입니다. 국민, 영토, 주권이라는 국가의 3요소 가운데 국민이 사라진 체제입니다. 국가와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은 뼈아픈 경험과 지극히 당연한 논리에서 비롯한 인권을 향한 발걸음이자, 세계가 공감하고 격려하는 옳은 방향입니다. 이웃나라에서 강제징용 판결 때문이라고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흐름, 무엇보다 인권에 기초해서 2012년, 그 후로 6년이나 지난 2018년에야 대법원은 강제징용자들의 권리를 최종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웃나라 사정은 당파적 이익을 위한 정권의 선택이지 나라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안쓰럽습니다. 언제 의자를 돌려 앉아 자국 국민에게도 같은 요구를 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일본 국민이 정부보다 현명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시간은 연속하고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작용하며 이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반성하는 미래는 소중합니다.

<함석천 |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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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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