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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 1호선 전철역 주변은 아침부터 부산했다. 길가의 포장마차는 일찌감치 장사할 채비를 끝냈고, 짐 실은 오토바이는 불룩한 비닐봉지를 손에 든 사람들 사이를 요령 있게 헤집고 다녔다.

오토바이가 들고나는 옆 골목으로 들어서니 전철역 주변의 소란스러움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봉제마을이라 불리는 그곳은 적막하리만큼 조용했다. 골목을 빽빽하게 메운 연립주택에는 900여개의 봉제 공장이 있다고 했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공중에 얽히고설킨 굵은 전깃줄과 건물 외벽에 늘어뜨려 놓은 파이프에서 뿜어 나오는 하얀 김을 보며 어디선가 재단을 하고, 재봉틀이 팽팽 돌아가리라는 것을 짐작할 뿐이었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이곳에서 정말 옷이 만들어지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간혹 언덕길을 부리나케 올라온 오토바이에서 내린 사람은 짐 보따리를 들고 건물 안으로 튀어 들어갔다가 곧바로 나와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쏜살같이 언덕길을 내려갔다.

사람을 만난 곳은 봉제마을 윗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었다. 1960년대 평화시장 봉제 공장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창신동 봉제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관은 산뜻했다. 그곳에는 1970년대 빛도 들지 않는 다락방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 16시간을 일하면서 풀빵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어린 소녀들의 절망도 있었지만, 고된 노동을 온몸으로 버텨낸 봉제 공장 노동자들의 자부심도 있었다. 시다였던 누군가는 미싱사가 되고, 재단사가 되어서 단 하루면 새 옷을 완벽하게 만들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이만큼 숙련된 노동자들이 많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봉제마을의 자랑은 당연했다.

“삼사십 년 동안 쓴 가위를 기증받아 판매해요. 그분들의 시간이 녹아 있어서 따지고 보면 그리 비싼 건 아니에요.”

박물관 직원은 진열된 가위를 한참 들여다보고만 있는 내가 딱해 보인 모양이다. 하나, 손잡이에 수없이 휘휘 친친 동여맸을 헝겊마저 해진 낡은 가위를 선뜻 사지 못한 건 누군가의 귀한 시간에 값을 치르는 게 민망해서다. 수십 년을 이어온 묵직한 시간의 가치에, 청춘을 바친 노동의 가치에 과연 값을 매길 수 있을까.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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