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해직자 26명의 2009~2013년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은 2013년 6월7일 모터쇼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터쇼라니. 해직자들이 쌍용차의 신차발표회에 가서 부당해고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나보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 모터쇼의 이름은 H-20000이었다. ‘20000’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개수를 가리키고, ‘H’는 HEART 혹은 HOPE 혹은 사다리를 뜻한다고 들었다. 그 모터쇼에 나온 차는 달랑 한 대였다. 

그 차를 만든 사람들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었다. 해고된 지 5년째에 접어들자 노동자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뭐였지?’ ‘왜 우리는 매일 투쟁만 하고 있는 거지?’ ‘맞아, 우리 원래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이었잖아.’ ”

해직자들은 중고자동차 가게에서 2004년산 코란도 밴을 구입해 해체한 뒤, 낡은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조립해 ‘그들만의 차’를 만들었다. 거리와 옥상, 첨탑에서 농성을 하며 ‘시위꾼’ ‘빨갱이’로 매도당하던 그들은 오랜만에 차를 만진 뒤 아이처럼 좋아하고 울었다.

부끄럽지만 그들이 모터쇼를 진행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정리해고의 피해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노노사정(노조, 회사, 정부) 합의에 따라 2020년 1월 복직하기로 했던 쌍용차 해직자 중 46명의 복직이 무기한 연기됐다. 회사는 그들에게 임금의 70%를 주겠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일도 안 하고 돈을 받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비아냥댄다. 복직예정자 김득중씨는 지난 23일 월급 97만6149원을 받았다. 김씨는 1993년 입사해 올해 27년차다. 서류상으로는 쌍용차 직원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액수만 문제는 아니다. 쌍용차 해직자들은 ‘존재의 이유’와 싸웠다. 왜 갑자기 해고되었는가. 경찰특공대가 희대의 진압작전을 벌일 만큼 파업이 불법이었는가. 10년간 30명이 목숨을 잃은 것도 이런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경기 평택이라는 도시를 터전으로 살던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산 자’와 ‘죽은 자’로 분리됐고,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공동체도 무너졌다. 죽은 자들은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쌍용차 출신이라는 것을 숨겨야 했다. 그렇게 10년7개월을 버텼다. 남은 복직예정자들은 ‘쌍용차 생존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참담한 사실은 그나마 쌍용차 문제가 지난 10여년간 가장 큰 관심을 받은 해고사건이라는 점이다. 오늘도 전국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옥상에 오르고 차가운 길바닥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곡기를 끊으며 기약 없는 투쟁을 하고 있다. 정부까지 나서 도장을 찍은 쌍용차의 복직합의가 복직 1주일 전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파기되는 사실을 보며, 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는 그 많은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아마 더 외로워졌을 것이다. 노동하며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바람이, 2020년에도 어떤 이들에겐 몸과 마음을 다쳐가며 절규해야 할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야 할까.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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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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