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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2017)에서 시국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고문 중 사망하자 경찰은 은폐를 목적으로 시신 화장을 검찰에 요청한다. 그런데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공안부장 최 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한다. 그가 부검을 요구한 건 법질서를 확립하려는 신념이나 망자에 대한 연민도 있었지만 검찰이 매번 안기부나 경찰, 군인들에게 밀리는 꼴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배를 시켜 다음날 가장 일찍 출근한 기자에게 대학생 한 명이 고문받다 죽었다는 사실을 슬쩍 흘린다. 이 사실이 기사화되자 전국이 들썩이고 그는 곧 옷을 벗는다.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오던 최 검사는 사건의 경위를 따져 물으며 쫓아오는 기자를 보자 자신의 차 옆에 부검 감정서 등의 문건이 담긴 상자를 남겨두고 떠난다. 기자는 이를 보도하고 민주화 열기는 더 고조된다. 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검사와 기자의 ‘은밀한’ 교류를 음습하게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기자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당시 기자들의 근성과 땀나는 취재에 박수를 보냈다.

MBC <PD수첩>은 지난 3일 ‘검찰 기자단’ 편을 통해 검찰발 받아쓰기 관행과 검언유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검찰이 정보를 내주는 기자와 정보를 제공하는 순서를 선별하면서 단독과 특종에 열 올리는 기자들을 길들였으며, 기자들의 민원을 검사가 들어주고 기자들은 검사들의 승진을 위해 맞춤 하마평을 쓰는 등 유착 현상이 벌어졌다는 게 비판의 주요 내용이었다. 방송에선 검사가 브리핑 중에 피의사실을 슬쩍 흘리거나, 기자 앞에 조서를 놓아둔 채 통화를 핑계로 자리를 비켜주는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법원 기자단 일부는 성명을 내며 검사가 조서를 두고 자리를 비키는 일은 현재는 물론 과거 법조 선배들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조직은 조직끼리 싸우기 일쑤고, 조직은 밖에서 보면 한 덩어리 같지만 가까이 보면 계파가 나뉘어 갈등하고, 또 개인마다 생기는 이견이 불쑥 표출되기도 한다. 기자는 밀착하여 따라가다 미세한 균열을 파고들면서 누군가의 실수, 밀고, 폭로 속에 담긴 진실을 포착한다. 그래서 땀내 나는 외곽 취재도 있어야 했고 공익적 가치가 있다면 출입처가 의도를 품고 던지는 소스도 냉큼 짚어 기사를 낼 때도 있었을 거다. 그런 모든 방식이 작동하기 위해 ‘불가근불가원’이라는 원칙이 공유되었고 출입처 제도를 필요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교류’가 없었다고 하면 출입처와 기자단 운영은 그럼 왜 있어야 했는지 오히려 반문하게 된다. 그러니 <PD수첩>에서 문제 제기한 장면들이 없었다고 말하기보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기존 관행에 순기능도 있었다고 말했어야 한다.

최근 ‘검찰 기자실 폐쇄’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하자 하루 만에 2만명 가까이 동의를 했다. 많은 시민들이 과거에는 용인했던 시스템이 이제는 무용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출입처와 기자들이 맺는 관계에서 오는 실익이 시민들에게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거 사법농단이 벌어지고 있을 때 그 시스템으로 무엇을 했는지, 그동안 검찰이 준 소스를 최대한 검증해서 보도했는지 언론에 묻고 있다. 그리고 검찰이 흘리는 게 여느 출입처가 내는 정보와 다른 피의사실이라면 그걸 단독 기사로 쏟아내는 걸 더 이상 수긍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지금의 출입처, 기자단 체제는 강력한 검찰에 대응할 목적으로 견고해졌다고 짐작하지만, 기성 매체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후퇴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시민의 이익을 외면했다면 이를 개선할 변화가 필요하다.

PD들은 ‘숙련 과정 없이 짧은 취재 기간을 거쳐 긴 프로그램을 내는 건 무리라는 우려’ 속에서도 그간 유의미한 공간을 만들어왔다. 주류 언론이 출입처와의 관계로 순치됐다는 비판을 받을 때 비주류 탐사 프로그램들은 굵직한 사건을 계속 터트려왔다. 이번 <PD수첩> 방송은 그간 취재의 빈 공간이 얼마나 컸는지 설명하면서 스스로가 어떻게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를 설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속보경쟁에서 벗어나 사실검증에 집중하는 매체들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조금씩 끌어내고 있다. KBS는 출입처 취재 관행을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진보 매체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한 것 같다. 제도에는 항상 명암이 있는데 지금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변화를 응원한다.

<김신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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