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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녹색세상

그래도 해야지, 선거!

경향 신문 2021. 4. 2. 09:38

내 인생 단 한 번도 선거를 거른 적 없다. 코로나19가 닥친 지난 총선, 한 손에는 손소독제를 거머쥐고 한 손에는 고무장갑을 낀 채 기어이 투표를 하고야 말았다. 만에 하나 고무장갑이 거절당할 경우 비닐장갑을 버릴 위험에 처할지라도 장렬히 이내 한 표를 행사하리라. 투표 독려상이 있다면 받고도 남았을 나로서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거슬렸다. “-4와 -3 중 한쪽을 선택하기 위해 투표소까지 가라고 해 봤자, 난 안 간다. 그런 데는.” 그런데 요즘 하루키의 막돼먹은 소리를 곱씹는다. 대관절 이 선거가 비닐장갑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비닐장갑 한 장의 두께를 0.02㎜로 치면 지난 총선 때 63빌딩 7개 높이의 장갑이 버려진 셈이다. 비닐은 미세플라스틱으로 쪼개질 때 이산화탄소보다 25배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내뿜는다.

내 보기에 서울시장 당선이 유력한 후보는 -4와 -3 중 하나다. 전 시장의 성폭력을 책임지기는커녕 당론을 변경하면서까지 후보를 낸 여당, 건물 못 지어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스피드’ 규제 철폐와 개발만 내세운 후보. 사실 가장 좋은 정책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서울을 내세운 ‘탈시설장애인당’에서 나왔으나 엄격진지근엄하신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를 금지했다. 그 결과 장애인이 직접 제안하는 정책을 알릴 기회도 사라졌다. 장애인당은 공식 정당이 아닌 곳에 ‘당’을 붙이면 안 된다는 선관위에 그럼 예배당과 숭구리당당도 금하는지를 물었다.

서울시장 후보 12명 중 쓰레기 매립장과 일회용품의 대안을 언급한 후보는 2명뿐이다. 인천시는 2025년부터 수도권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고 ‘쓰레기 독립’을 선언했으나 서울시장 후보들은 별 관심 없어 보인다. 또한 기후위기를 막을 탄소중립 정책을 제시한 후보는 6명이었다. 서울시장 후보마다 침 튀기며 주택 공급과 개발 공약을 내놓지만 에너지 저감과 재생에너지를 적용한 건축물 정책은 드물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1위로, 1990년대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은 462%,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61% 증가했다. OECD 국가 중 최고 증가율이다. 특히 서울은 지역의 에너지를 뽑아 쓰고 쓰레기는 외부에 내다 버리는 얌체 같은 지역이다. 충청남도는 전국 석탄발전소 발전량의 53%를 생산하는데 수도권과 가깝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미세먼지에 시달린다.

나도 마이너스나 뽑자고 투표장에 가고 싶지는 않다. 이번 선거일은 휴무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해야지, 선거. 미국 기후행동단체 ‘선라이즈무브먼트’는 시위든 선거든 둘 다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소수당 후보들의 기본소득과 차별금지법 같은 정책을 살핀다. 홍보물이 코팅지인지 재생용지인지를 찾아본다. 왜 서울에는 광주광역시의 기후위기대응본부나 충청남도의 ‘탈석탄 금고’가 없는지 분통을 터뜨린다. ‘탈석탄 금고’란 지방정부가 석탄 관련 투자를 철회한 은행에 재정을 맡기는 것이다. 지방정부 중 돈이 제일 많은 서울시 금고를 맡은 신한, 우리, 국민은행 중 국민은행만이 탈석탄 금융을 선언했다. 서울시는 2020년 전국 56개 자치단체와 교육청이 참여한 ‘탈석탄 금고’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니 하루키처럼 쿨하지 못한 채 바리바리 고무장갑과 손소독제를 챙기고 투표장에 간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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