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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조선시대 황해도에 조수(潮水)를 공부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밀물과 썰물만 관찰하기를 60년. 그 결과는 책 두 권이었다. 당시의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먹고 입을 것을 장만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데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무용한 일에 정신을 다 소모했다며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조귀명은 이 사람에게서 조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았다.

<예기>에 의하면 상고시대의 왕들은 물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큰 바다보다 작은 하천에 먼저 하였다고 한다. 바다가 어마어마한 크기와 위력을 가지게 된 것은 근원이 되는 작은 샘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당장 눈을 압도하는 바다에만 정신이 팔려서 정작 그 물이 어디에서 흘러온 것인지는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공부에 있어서 근본에 힘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비유다.

조귀명은 공부가 유용함에 이르는 단계를 넷으로 제시했다. 근원을 탐구하여 말류에까지 미치는 학(學), 마음과 뜻을 온통 집중하는 공(工), 남다른 깨달음을 얻게 되는 진(眞), 그리고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는 성(成)이다. 근본에 힘쓰는 노력과 한 우물만 파는 집요함이 오랜 시간 쌓이지 않고서는 독창적인 식견과 넉넉한 유용함에 이를 수 없다. 평생 혼자서 병법만 연구한 유중림이 <병학대성(兵學大成)>을 저술하자, 조귀명은 이 책이야말로 학(學)에서 성(成)에 이른 독보적인 성과라고 평가했다.

작은 관심과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공부가 놀라운 유용함으로 이어져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는 것을 본다. 예전에 무용하다고 여겼던 지식들이 축적되고 연결되어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누구나 볼 수 있는 말류만 더듬으면서 대단한 유용함을 기대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본다. 좋아서 뛰어든 자신만의 일도 없이 남들 앉으면 앉고 남들 일어나면 일어나는 사람들만 가득한 현실을 보며 조귀명은 통탄했다. 무언가에 빠져들어 미친 듯이 파고드는 사람이 있어야 이제껏 없던 새로운 유용함의 길이 열릴 수 있다. 거기에 드는 시간을 인정하고 근본에 힘쓸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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