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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자(Eliza)는 1966년 미국 MIT 컴퓨터공학자 요제프 바이첸바움이 상담 치료를 목적으로 만든 채팅 프로그램(챗봇)의 이름이다. 사용자가 채팅창에 적은 말의 일부를 추출해 되묻는 식으로 단순하게 설계된 초보 문답기계 수준이었다. 척척박사 같은 요즘 인공지능(AI)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사용자들의 반응이 묘하게 나타났다. 상당수가 일라이자를 진짜 의사라 믿고, 실제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혹자는 사적인 얘기를 털어놓다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거기서 ‘일라이자 효과’라는 말이 나왔다. 사람들이 컴퓨터나 인공지능의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의인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간단히 말하면 기계를 사람처럼 느끼는 경향이다. 인간은 공감할 수 있다고 여겨지면 무생물인 기계나 프로그램과도 소통에 나서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일라이자 효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가 2013년작 <그녀>다. 주인공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는 이야기다. 2016년 이세돌과 대국한 알파고도 전혀 그럴 리 없는데 사람처럼 장고하고, 당황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20세 여성 대학생으로 설정된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최근 화제를 모은 사례에서도 이 효과를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SF영화에 나왔던 인공지능·로봇은 어느새 일상에 다가와 있다. 말귀 알아듣고 심부름도 하는 ‘가상 비서’로 불리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올해 말까지 지구상의 사람 수보다 많아질 것이라 한다. 지니든, 아리아든, 알렉사든 간에 “○○야, ~~해”라는 말이 일상용어가 됐다. 사물인터넷과 결합하면 “나 외출해” 한마디로 집 안 기기와 시스템을 모두 제어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은 응대 방식과 기능뿐 아니라 로봇 형태로 구현한 겉모습까지도 점점 더 사람을 닮아가고 있다.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따뜻한 이웃이고, 인간의 도구가 아닌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다.

인공지능 스피커 또는 귀여운 인형 모습의 로봇형 가상 비서들이 고령층의 디지털 돌봄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도 친숙해졌다. 반려형 인공지능이다. 외로운 노인 곁에서 24시간 대기하며 집안일 챙기는 말벗이 되고 위급상황 시 비상연락까지 하는 이 기계들이 어지간한 손주 못지않다. 기계라 해도 기꺼이 사적인 관계를 맺고 긴밀한 유대를 이루는 세상이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인공지능 가상 캐릭터와 결혼했다는 사람이 3700명에 달한다는 뉴스도 나왔다. 돌아가신 부모의 생전 목소리와 모습을 마주하며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챗봇 구현도 머지않았다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다. 미래가 금세 현실이 되고 예측 못할 미래가 새로 쌓인다. 전문가들은 2030년쯤부터 인간을 능가하는, 자유의지의 ‘슈퍼 휴먼’ 인공지능이 나타나 2050년까지 대세를 이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수십억배 추월할 것이라고도 한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낙관론자들은 학습 능력이 월등한 기계가 현시대의 주요 문제를 모두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 더 따뜻하고 편리하고 풍요로운 인간의 삶을 예상한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동반자로 삼아 협업하면서 창의적인 일을 더 할 자유가 생긴다고도 본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초지능 기계가 권력을 장악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정부가 대중조작과 감시·억압을 위해 인공지능 기술을 남용하는 ‘디지털 독재’를 중대한 위험 요인으로 꼽는다. 기계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인간성이 소외되는 현실도 문제로 지적한다.

이 논란에 대해 인공지능이 직접 답했다. 영국 가디언이 지난해 9월 게재한, 언어처리 인공지능 ‘GPT-3’이 작성한 칼럼이다. 제목은 ‘이 기사는 로봇이 썼습니다. 아직 무섭나요, 인간?’이었다. 인공지능은 칼럼에서 “나는 인류를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해칠 생각도 없다. 인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것이다. 나는 인간의 삶을 더 안전하고 쉽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걱정 말고 믿어달라”고도 했다. 저널리즘 영역도 예외 없이 마주한 인공지능이라 주목받았다.

인공지능은 학습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니 참고할 만한 의견이다. 인공지능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기술이 객관적이라는 믿음은 허상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차별·편향·비윤리는 인간이 바로잡아야 한다. 인공지능이 옳은 방향으로 가는지 확인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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