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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민주노총으로부터 “보육노동자들을 대표해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모든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만큼 부담감과 우려가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보육노동자들처럼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는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말의 기대감이 무너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용자위원들의 완고한 저항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래도 최저임금위원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의미있는 토론이 있을 줄 알았다. 보육현장 사례를 소개하며 최저임금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현실과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유지에 갖는 의미를 설명했지만 이에 대한 의미 있는 토론이 이어지진 않았다.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 모두 최저임금 노동자의 현실 토로 과정은 마치 ‘지나쳐야 할 하나의 요식행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최저임금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다른 노동자위원이 “처음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한 분들이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많이 호소한다”고 말한 게 기억난다. 내가 그랬다. 위원회 심의과정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나는 위원회 구색을 맞추는 데 필요한 사람에 불과하고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하는 불쾌감이 일었다. 돌이켜 보면, 토론도 없고 형식적이었던 심의과정에서 노동자위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이 낸 안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퇴장하는 일이 다였던 것 같다.

결국 올해 최저임금은 노동자위원들이 모두 퇴장한 상황에서 1.5%라는 역대 최저 인상률을 기록하며 8720원으로 결정되었다. 최저임금 심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공익위원들이 미리 정해진 방침하에 심의를 진행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역대 최저 인상률을 기록한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자위원’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최저임금법에는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제4조)’고 결정기준이 명시돼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임금노동자의 생계비와 소득분배가 최저임금 결정에 깊이 있게 고민돼야 할 시점이지만,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그러한 고민과 토론이 진지하게 이뤄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형식적인 위원회 운영을 통해 노동계 의견을 무시하고 역대 최저수준 인상률을 밀어붙인 공익위원들이 유임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노동자를 대표해서 말하고 싶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 하려면 형식적이고 파행적인 위원회 운영에 책임이 있는 공익위원들을 유임해서는 안 된다. 공익위원들은 정부 입장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지난해 내가 경험한 공익위원들은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함미영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장·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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