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위원회는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에서 판지 병원(Panzi Hospital)을 설립해 분쟁하 성폭력 피해자 수만명을 치료하고 지원해 온 드니 무퀘게 박사에게 2018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저는 9년 전 유엔 고위직으로 인권 업무를 수행하던 중 DR콩고를 방문했는데, 현장에서 성폭력 생존자들을 치유하는 데 평생을 바쳐 온 무퀘게 박사와 2주간 같이 일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무퀘게 박사가 2~3일 ‘제1차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이번 회의는 우리 정부 주도로 작년 6월 출범한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Action with Women and Peace)’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열리는 첫 국제회의입니다. 이니셔티브의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분쟁하 성폭력 피해 여성 및 소녀들을 위한 사업을 현장에서 지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여성·평화·안보라는 유엔의 중요한 의제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논의의 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국제회의’에는 무퀘게 박사를 비롯해 분쟁하 성폭력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아프리카연합 여성·평화·안보 특사 등 분쟁하 성폭력 문제 해결을 이끄는 글로벌 리더들과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참석합니다. 분쟁하 성폭력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 생존자들의 경험과 증언을 직접 청취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 국제 청년 논문 공모전을 통해 미래 세대들이 생각하는 창의적인 대응 방안들을 공유하는 순서도 있습니다.

분쟁하 성폭력에 대한 국제적 논의의 역사는 짧지 않습니다. 국제사회는 내년 20주년을 맞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325호를 통해 분쟁하 성폭력이 인권 유린의 문제를 넘어 국제평화와 안보에 대한 도전임을 직시하고, 분쟁의 예방과 그 해결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후속 안보리 결의들과 다양한 대응 노력들을 통해 이 문제는 오늘날 국제사회 핵심 의제의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누군가가 ‘왜 우리나라가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서 이 주제가 갖고 있는 비중과 중요성,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 위안부라는 가장 극명한 분쟁하 성폭력의 피해를 직접 경험한 한국이야말로 이 의제에 기여하고 논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역사적 소명과 역량을 갖춘 남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간 정부는 분쟁하 성폭력 문제에 있어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피해자의 존엄과 상처를 치유하며, 이러한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시민사회와 함께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로힝야 난민 여성과 여아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 왔고, 올해에도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관련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9월 제73차 유엔 총회에서 분쟁하 성폭력을 철폐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듯이, 이 같은 피해자와 생존자 중심의 접근법은 ‘사람중심’ 국정철학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이번 회의가 아직도 성폭력이 전쟁의 수단이 되는 참혹한 현실의 굴레를 끊어내고 여성이 소외되지 않는 사회, 분쟁의 예방과 평화 구축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에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강경화 |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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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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