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이 지난 11일 다시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돌아왔다. 14년이 흘렀지만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은 아직 결정적인 승리도 거두지 못하고, 발을 빼지도 못하고 있다. 서방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문명충돌은 여전히 증오와 복수의 악순환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에는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고대 유적 연구자인 노학자를 살해하고, 2000년 된 신전을 파괴했다. 수십만명의 난민은 지구를 떠돌고 있다. 갈 데까지 간 야만적 행위이다. 단순히 반세력에 대한 테러리즘이 아닌 인류 문명에 대한 일종의 도전적 선언이다.

테러를 두고 사람들은 인륜을 저버린 범죄, ‘문명의 충돌’ 등으로 설명한다. 특히 새뮤얼 헌팅턴은 오늘날 이데올로기나 경제적 가치 대신 언어·종교·민족 등 문화적 특질의 집합체인 문명이 경쟁과 갈등의 주체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세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기저에 문화적·이념적 분열이 존재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슬람은 전투성과 화합불능성이 특징으로, 폭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고 단언하는 서구의 주장은 이슬람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작은 사실로 더 큰 다른 사실들을 왜곡하는 ‘서구 중심적인’ 편향적 시선으로, 억울함과 저항심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반서방 측에서는 테러를 ‘무신경하고 오만한 서구 급진적 자유주의와 제3세계의 충돌’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서방 여론들이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배척과 폭력조차 단순히 문명충돌론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러의 근원은 ‘강한 자에 대한 약자의 충돌’이라는 명제가 힘을 얻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규탄 시위 참가자들이 행진을 막는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_AP연합뉴스


오늘날 세계에서는 너무 많은 갈등과 증오가 무자비한 테러 행위로 표출되고 있다. 더구나 IS가 자행하는 참수와 인류 문명 파괴의 폭력적 극단주의 테러 전략은 누구로부터도 옹호받을 수 없는 인류에 대한 야만일 뿐이다. 문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종교이지만, 어느 종교든 종교 교리와 폭력이 직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특정 종교에 본질적으로 폭력적 요소가 있다고 강변하는 논리는, 권력이나 정체성 투쟁의 와중에 종교가 간접적으로 연루되거나 책략가들에 의해 ‘동원’된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제 테러는 국제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안보와 치안의 문제가 되었다. 한국 역시 결코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점차 세계 속에서 높아지는 위상과 사회적 문제 증가, 급속히 진행 중인 세계화와 상호의존 현상을 감안하면,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더구나 점차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불법체류자, 무슬림 2세와 은둔형 외톨이, 사회 불만자 등 인적 위험요인이 상존해 있으나 필요한 대응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과연 한국 내부의 이념갈등 극복과 사회적 통합은 언제쯤 가능할 것인가? 물론 우리 사회 기저에 합리성이 있다고 믿기에, 상당 부분 극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 살고 있는 177만명의 외국인과 새터민이 내부의 소수자로서 겪고 있는 낙인과 차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가. 아직도 우리는 수많은 지역적·경제적 차별과 갈등조차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층의 약자에 대한 차별이 필연적으로 증오를 낳고 폭력과 테러를 부르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사회 약자들도 꿈과 희망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편협한 배타주의를 넘어선 사회적 통합과 보편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이만종|호원대 교수·한국테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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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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