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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 만에 고등학교 3학년 첫 등교수업이 시작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팔꿈치 인사를 하며 반가워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거리 두기’의 시대이다. 식당에서 마주 보고 밥을 먹는 것도,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소통하는 것도, 동창회나 가족모임도 모두 위험으로 간주된다. 타인의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험’이 되었고, 마스크는 일상의 에티켓이 되었다. ‘뉴노멀’은 사람들 간의 물리적 거리를 요구하며 우리를 점점 멀어지게 하는 듯하다.

전염병은 일반적인 질병과는 달리, 내가 감염이 되어 ‘피해자’가 됨과 동시에 다시 타인을 감염시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한 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러스가 무서운 이유로 사람들은 ‘내가 감염되어 사회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장 많이 꼽았다. 혐오스러운 타자와 접촉하는 순간 내가 다시 그 혐오스러운 존재로 탈바꿈되는 공포영화 속의 ‘좀비’처럼, 전염병 공포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애(自己愛)와 더불어 타인에 대한 공포와 죄의식이 복합적으로 섞인 이질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거리 두기’가 서로를 멀어지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20일, 80일 만에 등교개학을 하던 날, 교사와 학생들은 “오랜만에 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다”며 서로를 반겼다. 그 반가움의 기저에는, 멀었던 서로가 다시 만난다는 기쁨과 함께, 상대방이 80일 동안 ‘거리 두기’를 하며 느꼈을 감정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자리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온 국민은, 나아가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은 ‘거리 두기’라는 하나의 동일한 행위를 실천했다. 지구촌 사람들 모두가 공통된 경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코러나19 바이러스 감염 공포와 타인과의 거리 두기 속에서 개인이 겪는 두려움과 외로움, 우울함, 때로는 분노와 희망까지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미국의 자가격리자에게도, 이탈리아의 환자에게도, 코로나19 사태 속에 자녀를 등교시키는 대만의 학부모에게도 공통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공감과 위로를 건넬 수 있다. 빈자나 부자, 미국과 같은 부국이든 혹은 제3세계 빈국이든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차별 없이’ 감염시키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적 인간사회의 칸막이를 넘어 ‘우리는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동등한 인간’이라는 범인류적 메시지를 일깨워주기도 한 것이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나아가 ‘뉴노멀’로 이어질 세상에서, 우리는 코로나19 위기 속 집합적 경험이 만들어낼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거리 두기’라는 집합적 기억 속에는, 타인에 대한 공포의 감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 혐오에 기반한 공동체의 가능성과, ‘거리 두기’를 통해 얻은 공통의 감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인류애적 공동체의 가능성이 동시에 잠재되어 있다. 

쉬이 끝나지 않을 코로나19 대유행의 시대, 가깝게는 마스크로, 멀리는 국경으로 가로막힌 ‘타인’의 존재가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보다는, 공통의 체험에서 비롯된 공통의 감정을 공유하는 인류애적인 대상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80일 만에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난 선생님이 느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던” 감정처럼, 물리적 거리를 두면서도 우리는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유기훈 |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노들야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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