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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특허청이라는 행정기관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정부조직법과 특허법에 그 답이 있다.

정부조직법에 의하면 특허청은 특허에 관한 사무와 심사·심판 사무를 관장하기 위한 기관이다. 이들 사무의 실체법적 규정은 모두 특허법에 있다. 이에 따르면 특허청은 특허권을 취득할 자격이 되는지를 가리는 사무 즉, ‘특허 심사’가 핵심 업무다.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특허 심사의 성격과 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나면, 자기 역할은 내팽개치고 통제 불능의 괴물로 변해가는 특허청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허제도를 사회계약론으로 설명하면, 특허권이란 유익한 발명을 했다고 부여되는 권리가 아니라 자신의 발명을 사회에 공개한 대가로 주어지는 권리이다. 그런데 이 사회계약론이 유지되려면 발명이 제대로 공개되는지, 독점권을 부여할 자격이 있는 발명인지 제대로 가리는 작업을 누군가 해야 한다. 이 작업이 바로 특허청의 핵심 사무인 ‘특허 심사’이다. 달리 말하면, 특허청의 역할은 발명을 사적으로 독점하려는 자를 견제·규제하고, 사익에 맞서 공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특허청 후원으로 29일 열린 위조상품 유통근절 캠페인(경향DB)

 

그런데 특허청은 자신이 규제해야 하는 자를 고객이라 부르며 특허권자를 위한 서비스를 특허 행정으로 취급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만약 어느 법원이 소송을 많이 제기하는, 그래서 법원의 수수료 수입을 올려주는 원고를 고객이라 부르면서 이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한다면, 그 법원의 판결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그런데 특허청은 특허권자를 공공연히 고객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특허청이 공정한 특허 심사를 할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특허청이 제 역할을 내팽개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특허권자가 내는 수수료로 특허청이 운영되고, 독립채산제를 기반으로 특허청장의 임기와 인사권을 보장하며 예산 자율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허청은 자신의 수입을 늘리려는 구조적 동기를 가지며, 수입 확대를 위해 특허권자의 이익을 편향적으로 반영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그리고 특허청은 마치 특허 제도가 없으면 기술혁신도 없고 창조경제도 불가능할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는 기술의 독점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들의 시장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특허청은 편협하고 위험한 시장논리를 퍼트릴 것이 아니라, 독점권이 없어도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영역을 확대하고, 기술을 독점하려는 자를 제대로 견제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바람을 타고 특허청은 본연의 역할은 저버리고, 공공정책을 훼손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굳이 특허제도에 기대지 않더라도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대학이나 공공연구의 성과를 최대한 특허출원하도록 유도하거나, 중·고등학생들에게 창의적 아이디어를 공유하도록 가르치기는커녕 특허를 통해 아이디어를 독점하라고 부추긴다. 그리고 우리나라 모든 가구가 최소한 하나의 특허권을 갖도록 하자는 운동을 창조경제 실현계획에 집어넣고, 심지어 발명 내용이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은 수첩 속 아이디어까지 특허를 받게 해 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쯤 되면 특허청이 과연 공공정책을 담당할 국가기관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특허청은 특허정책, 더 나아가 산업 정책이나 경제정책에서 경계해야 할 특수한 이해당사자로 전락했다.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다. 특허청의 전문성을 과신하고 이들이 퍼트리는 편협한 이데올로기를 맹신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제라도 특허청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특허청의 독립채산구조를 해체하여 특허청이 피규제자에게 포획당한 구조적인 요인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특허청의 심사 기능을 보장하기 위해 심사 조직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특허권을 통한 기술 독점과 사적 소유화의 전도사 역할을 더 이상 특허청이 하지 못하도록 발명진흥법 등 관련 법령도 고쳐야 한다. 이런 최소한의 제도적 손질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정부 부처의 견제나 국회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은 채 특허청은 점점 더 사익을 추구하는 괴물로 변해갈 것이다.

남희섭 |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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