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명(geographical name)은 지구상의 장소나 지형, 구조물, 행정구역을 지칭하기 위한 이름이다. 우리가 세계 어떤 도시를 돌아다니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문서를 읽을 때 지리명을 사용한다. 표준화된 지리명은 지리정보시스템에서 정확한 지리정보를 얻는 열쇠를 제공한다. 

표준화된 지리명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중복 또는 혼동하기 쉬운 지리명은 응급 서비스나 위기상황 대응에 혼란을 초래한다. 6·25전쟁 때 미군 폭격기가 평북 정주와 충북 청주를 혼동해 청주를 폭격한 사건이 있었다. 지도에는 정주와 청주가 외국인에게는 발음이 같아 Chongju로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기구에서는 일찍이 지리명의 일관성과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표준화를 추진해왔다. 1967년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는 비로마 문자시스템을 로마자로 변환하는 전자법(轉字法·transliteration)을 표준으로 결의했다. 비로마자를 로마자로 전환하고 그 역전환이 가능하도록 하여 글자 대 글자의 one to one mapping이 되는 표기법이다. 왕십리를 Wang Sib Ri로 전환하면 외국인이 그것을 가지고 역전환해 원래의 왕십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2000년 문체부가 개입해 국민 선호도 조사를 통해 국제표준화정책과 동떨어진 길거리 회화용 표음법(表音法·transcription)을 로마자표기법으로 정했다. 문제는 왕십리를 Wangsimni로 전환하면, 그것을 가지고 역전환하여 왕십리로 돌아올 수 없고, 죽리(竹里)와 중리(中里)를 같은 발음으로 Jungni로 전환하면, 역전환으로 죽리와 중리로 구분해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후 2002년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는 지리명 로마자표기법은 문자 전환이지 발음 전달이 아님을 결의했고, 2013년에는 한국의 로마자표기법을 국제표준으로 승인하지 않았다. 

더욱이 2015년 문체부에서는 역사문화유산으로서의 지리명 결의를 위반하는 훈령을 제정했다. 남산을 Nam San으로 하지 않고 Namsan Mountain으로 표기하도록 했다. 우리의 지리명 분류어(generic term)인 산(San)을 세계 지리명 분류어로 인정받지 못하도록 하여 지리명으로써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로 펼치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문체부의 잘못된 개입과 국토교통부의 무책임으로 지리명의 로마자표기법은 국제표준으로 승인받지 못한 채 혼란상이 만연하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K팝 등 한류의 영향으로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이 많이 생겼는데 이들 사이에 표음 방식 로마자표기법이 한글학습을 방해하므로 회피하는 증후군이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한국이 합리적인 제도의 시행이 안되는 나라로 폄하되고 있고 국가 경쟁력과 신뢰도도 떨어지고 있다. 

이제 국토부는 지리명 표준화의 중요함을 인지하고 과학적 전자법 로마자표기의 국제적 요구에 응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지리명의 머신리딩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김선일 | 과실연 사회제도과학화위원장·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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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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