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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측의 반발이 거세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관련해 도입한 구체적 행위태양(行爲態樣) 제시 의무 규정이 주요 화두인데, 위탁자에게 무리하게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과잉입법이라는 게 전경련의 주장이다.

구체적 행위나 형태를 제시하도록 한 의무 규정은 과연 무리한 입증책임 전환 규정일까? 해답은 명확하다. 첫번째로, 상생협력법 개정안에 구체적 행위나 형태의 제시 의무가 도입되더라도, 수탁자(권리자)는 여전히 기술침해를 구성하는 구체적 행위나 형태를 먼저 주장해야 한다. 이 규정은 권리자가 기술침해의 결과와 그 침해행위와 관련된 위탁자(당사자)를 확인하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상대방 당사자가 그 결과와 관련됐는지를 증명하기 곤란할 경우 권리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한다는 의미다. 즉 당사자에게 일방적으로 또는 무리하게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규정이 아니다. 특히, 구체적 행위나 형태의 제시 의무는 특허법상 이미 도입된 제도라는 점에서, 입증 책임 시시비비는 가려진 상황이다.

두 번째로, 구체적 행위나 형태의 제시 의무는 상생협력법상 입증 책임 전환 규정과 그 형식·내용에 문언상 분명한 차이가 있다. 상생협력법의 전체 체계를 고려할 때, ‘처음부터 입증 책임을 위탁기업에 부담시키는 입증 책임 전환 규정’과 ‘수탁자에게 먼저 기술침해를 구성하는 구체적 행위나 형태의 제시를 요구하는 규정’은 분명히 그 맥을 달리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기술분쟁은 기업 규모, 자본력, 정보력의 차이 등으로 발생하는 태생적 불평등과 증거의 구조적 편재에서 오는 실질적 불평등 상태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법률상 규정으로 인해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것 역시 법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이번 개정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의 실마리를 단계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법률상 입증 책임 전환이 아닌 입증 책임 완화의 방안을 선택했다. 이런데도 전경련 측에서 구체적 행위나 형태의 제시 의무 도입을 두고 무리한 입증 책임 전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민사소송법상의 입증 책임 원칙 및 증명책임에 대한 법리, 상생협력법의 입법 취지 등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수탁기업의 입증 부담이 완화되면, 손해배상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소송 과정을 겪어 봤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의 기술분쟁 시초부터 막대한 자본과 비용을 들여 대형로펌을 선임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거래 단절을 우려해 소송 제기를 고심하고, 어렵게 소송 결정을 했더라도 변호인 선임에서조차 어려움을 겪는다. 인지대·대리인 등의 소송비용도 큰 부담이다. 소송이 장기화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중소기업이지, 자본력과 조직을 갖추고 있는 대기업이 아니다.

상생협력법 개정안을 통해 진정한 상생협력의 의미를 돌아봐야 한다. 기업가치가 곧 무형자산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상생협력법의 입법 취지와 규범 구조, 위·수탁 거래 현실을 고려한 이번 개정안은 반드시 결실을 볼 필요가 있다.

박희경 |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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