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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유행 이후 물리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우리는 우리 삶이 사실은 다른 이들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전화로 다양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해주는 콜센터가 있고, 기본적 소비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물류센터와 택배·배달 노동자가 있고, 아이와 어르신들을 보살펴준 돌봄 노동자가 있다. 그런데 또 우리는 알고 있다. 비대면 생활이 가능하게 해준 이들 노동자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누구보다 취약한 사람들임을. 집단감염이 발생하기도 했고, 코호트 격리를 당하기도 했고,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심지어 임금노동자인지 애매하여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에게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나타날 경우 집에서 쉬어달라는 정부의 당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이러한 노동자들이 아프면 쉴 수 있도록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정부는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연구와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아프면 또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할 수 있다면 소득의 손실을 걱정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상병수당의 기본취지이다. 상병수당은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위기로부터의 충격을 줄여주기 위해 발전해온 국가의 사회보장체계 중 비어있던 한 고리였다. 실업이라는 위기에는 고용보험이, 업무상 재해에는 산재보험이, 퇴직이라는 위기에는 국민연금이 작용을 하듯, 일하던 노동자가 아플 경우 소득의 손실이라는 이중고를 겪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하루 일당이 걱정되어 아픈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출근하는 노동자는 줄지 않을까?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노동자들이, “제가 열이 좀 나서요, 회사에 못 갑니다. 휴가처리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의 근로기준법상 ‘병가’가 없고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연차휴가도 없는데, 앞선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휴가’를 쓸 수 있는 걸까? 단체협상이나 취업규칙, 관련 규정상에 ‘병가’가 없다면 한국의 모든 노동자들은 일단 ‘연차’를 써야 한다. 심지어 쓸 수 있는 연차도 없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어떻게 이 시기를 지내고 있는 걸까? 지난 3월 사업체노동력실태조사 현황에 따르면 연차도 쓸 수 없는 5인 미만 사업체는 123만개(60.5%)였고, 종사자는 전체 1820만명 중 333만명(18.3%)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연차를 포함, 근로기준법상 적용되는 조항이 별로 없는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도 있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기 위해 사업장을 쪼갠 사업주에 대한 고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고용노동부가 병가 제도 도입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아플 때 노동자들이 적절히 치료를 받으면서도 소득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는 상병수당을 고민하고 있지만, 일단 쉴 수 있는 병가 문제도 같이 고민되어야 한다. 식당일을 하던 엄마가 사고를 당하고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으며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면, 최소한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재원을 마련하고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 정부도 고민이 깊고,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노동자들의 걱정도 있고, 영세사업주에게도 부담이 된다. 정부의 관련 부처와 국회뿐만 아니라 영세사업주와 노동자들을 포함한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이 논의를 함께해야 할 이유이다. 아프면 쉴 권리를 위한 쉽지 않은 노정을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

김인아 한양대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교실 교수


 

오피니언 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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