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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안녕, 낯선 사람!

경향 신문 2018. 11. 20. 15:19

최근 문화예술계는 평화의 국면을 맞아 미지의 세계로만 여겼던 북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북한이탈여성’ ‘중도입국청소년’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경계에 선 아이들>과 <뷰티풀 데이즈>는 장르는 상이하지만 동일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영화는 관계 분열, 정체성 혼란 그리고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 공고한 유리천장을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그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지 고민하게 한다.

영화 속에는 월경(越境) 후 브로커의 인신매매로 중국 남성과 원치 않은 결혼을 한 탈북여성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등장한다.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시기 당의 식량배급이 끊기자 생존을 위해 수많은 북한 여성들은 국경을 넘어야만 했다. 하지만 대부분 취업사기, 납치 등의 방법으로 인신매매 범죄조직에 붙잡히게 되어 강제 매춘과 결혼을 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에 중국인과 결혼하더라도 호구(중국의 주민등록증)를 받을 수 없는 그들은 공안(중국의 경찰관)에게 발각되어 강제 북송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외출을 꺼리는 것은 물론 사람에 대한 불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다반사다. 정상적인 결혼을 할 수 없어 돈으로 사랑을 산 중국인 아버지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또 어떤가. 다소 낯설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두 영화의 감독들은 우리에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공통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꾸며진 허구에 불과한 것이 아닌 현재도 진행 중인 실존 이야기에 관객들은 파란만장한 인물 속 감정에 전이되어 눈물을 훌쩍이며 당장이라도 그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줄 것 같은 뜨거운 마음을 품고 영화관을 나선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모순적이게도 곧 그들의 다른 억양에 눈살을 찌푸리며 냉소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코쟁이 외국인이 서툰 한국어를 쓰면 “귀엽다” “그 정도면 잘한다”며 너그럽게 받아주지만 우리는 윗동네 사람들에게 유난히 엄격하다.

똑같은 이방인 신분임에도 왜 우리의 태도에는 이러한 차이가 존재할까?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먼저 ‘다문화’의 개념부터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이야기와 비슷한 사례로 미국인, 영국인 등 서양인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 우리는 ‘다문화’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지만, 필리핀,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 출신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는 ‘다문화’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이런 상황만 보아도 ‘다문화’라는 단어 속에는 비하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주민 차별 문제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내부엔 남녀 성대결, 학연과 지연 같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분열의 문화가 팽배하고 있다.

통일의 변곡점에 서 있는 2018년, 북한이탈주민 3만명 시대를 맞이한 우리의 시민의식은 안타깝게도 선진화되지 못했다. 북한이탈주민이나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사회적 책임을 갖고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 혹은 연민과 동정의 마음을 보여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들 역시 한 인격체로서 우리와 함께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능력이 있는 동등한 존재다. 이를 인정하고 개념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다문화 하면 연상되는 ‘아웃사이더’ ‘사회소외계층’ ‘비주류’와 같은 어두운 이미지를 지우고, 이제는 그들을 낯설고 불편한 이방인이 아닌 차별화된 문화와 언어로 우리 사회에 다양성을 공유해줄 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프레임을 가져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개방하지 않고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주민들과 사회 내 통일을 먼저 이뤄낸다면 한반도 평화는 물론 세계 평화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의식주만 시대를 좇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의식도 변화된 시대를 따라가기를, 수준 높은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해 본다. 기억하자, 나 자신도 결국 다른 누군가에겐 ‘낯선 사람’이라는 사실을.

<금초롱 | 동국대 북한학과 통일정책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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