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말 영국 철학자 존 로크는 <시민정부이론>에서 절대주의 국가주권을 제한하고자 권력분립론을 제창했다. 이어서 18세기 초 프랑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통해 입법·집행·재판의 ‘삼권분립론’을 완성했다. 사회계약론자에 의해 확립된 이 이론은 전 세계 여러 헌법정신에 계승되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권력분립론이 헌법 원리로 수용된 이유는 분명하다. 다름 아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여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시민의 자유와 인권 수호를 위해서다. 우리 헌법도 이에 기초하여 국가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부로 나누고, 입법권과 예산안 심의·확정권 등을 국회에 부여하였다.

올해 내내 혼란을 겪던 국회는 지난 6일부터 376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착수했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1월 말까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심의를 마치지 못하면 12월1일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이 때문에 현재 여야는 예산뿐만 아니라 예산부수법안 범위를 놓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서민증세안 중 주민세와 자동차세 등은 세입예산 부수법안이 아니라는 데에는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담뱃세 인상 관련 개정(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담배에 부과되는 제세부담금은 담배소비세, 교육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등 다양하다. 여기에 더해 개별소비세를 신설하는 조항이 개정(안)에 담겨 있다. 개별소비세는 ‘국세’지만, 담배소비세와 교육세는 ‘지방세’다.

야당은 예산부수법안에 세입만 포함되고 세출은 제외되며, 8월 세제개편안에 포함된 법률안만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여당은 내년 이후 세입 및 세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안은 모두 예산부수법안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행보는 쟁점 법안들을 예산부수법안에 최대한 많이 포함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민생 관련 법안이 예산부수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졸속 처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예컨대, 정부가 예산부수법안으로 포함시킨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이러한 우회입법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담배에 부과되는 건강증진부담금을 354원에서 841원으로 올리는 동시에 담뱃갑에 혐오스러운 그림을 도입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경고그림 도입’ 정책은 예산안과 전혀 무관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예산안과 분리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이를 반영하여 결정할 민생정책인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의 입법 취지는 국회에서 쟁점이 되는 안건에 대해 심도 있는 심의 과정을 거쳐 결정하라는 데 있다. 아울러 국민생활과 국가경제에 직결된 예산안에 한해 예외로 한 것이다. 그러나 민생 관련 일반 법안이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돼 국민들의 의견 수렴이나 별다른 논의 없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되는 것은 국회 스스로가 고유한 권한을 포기하는 처사와 다름없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 홍문표 위원장(가운데)과 여야 위원들이 16일 국회에서 첫 회의를 열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회선진화법 시행 첫해부터 이런 사례가 발생한다면, 향후 공론화하기 곤란한 내용이 대거 예산부수법안이란 명목으로 우회입법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예산부수법안 자동 부의 규정(국회법 85조의3)을 반드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 외에도 내년에는 각종 공공요금 등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태세다. 물가가 뛰면 서민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국민들을 깃털이 많은 거위로 여기는 듯한 느낌을 갖는 건 비단 필자 한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당장 세수 부족을 해결해야 하는 정부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럴수록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는 더더욱 정부를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삼권분립에 기초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예산안 심의에도 제대로 적용돼야 한다. 국회는 적어도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스스로 지켜나가길 바란다.


이승빈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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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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