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식되던 시절, ‘미감아’란 말이 있었다. 한센인들의 자녀들은 아직 한센병에 감염되지 않은 아이로 불렸다. 유전병이 아님에도 이들은 언젠가 걸릴 아이들이었다. 한센인들은 한국전쟁 시기 불안과 공포 속에서 공동체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집단학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편 소록도에서 여성이 임신을 하면 섬을 나가거나, 낙태를 선택해야 했다. 말이 선택이지 병든 만삭의 여인이 섬을 떠나 홀로 아이를 키울 수는 없기에, 상당수는 낙태를 선택했다. 식민지 시기 도입돼 전염병을 범죄화했던 조선나예방령은 해방 이후 법 자체가 개정되었어도, 곳곳에 궤적으로 남아 한센인들을 격리하게 했다. 한번 만들어진 통제의 법과 장치, 낙인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전염병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발생할 경우, 사회는 희생양을 찾았다. 공포·혐오의 대상과 그 해결방식은 중국인 입국 통제 논란으로 시작해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있다.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는 더욱 강력한 통제기술을 원한다. 어느새 당국은 자가격리 중 발생하는 이탈자 관리를 위해 전자팔찌 도입 논의를 진행 중이다.

시민들이 전자팔찌에 대해 거부감을 표하니 손목밴드로 용어를 듣기 좋게 바꿨다. 지난 8일 현재 자가격리 중인 사람은 5만1836명, 그중 무단이탈로 사법처리가 진행 중인 사람은 75명이다. 0.14% 남짓의 일탈적 행위로 절대다수의 선량한 시민이 범죄자로 취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절대다수의 격리자들은 확진자와 접촉했거나 혹은 해외에서 귀국해, 감염의 가능성만으로 본인들의 일상을 기꺼이 포기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격리하는 분들이다. 신속한 진단과 시민들의 철저한 자가격리로 1인당 전염률을 떨어뜨려 우리는 봉쇄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촛불로 만들어진 민주사회는 또 다른 미감인들을 만들어내며, 이들에 대해 정보기술에 의거한 격리와 준범죄화를 준비하고 있다. 전염병,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는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인권보호일 것이다. 그러기에 평시에는 허용되지 않는 다양한 정책과 기술들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명목으로 도입된다. 하지만 유엔의 시라쿠사 원칙은 재난 등 긴급 상황에서 자유를 제한할 경우조차 법에 근거하고 있는지, 불가피한지, 목적에 부합하는 것인지,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수정 가능한 것인지, 차별적이지 않은지, 한시적으로만 실행되는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한국 사회가 자랑하는 민주사회의 투명성, 개방성은 과학적 근거와 원칙, 시민의 신뢰와 참여를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시민을 미감인으로 몰고 준범죄자화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 원칙과 지속 가능한 방역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자가격리자 8만~9만명에게 누가 일일이 직접 접촉하면서 전자팔찌를 채울까?

근대에 태동한 인권의 잣대는 때로는 초유의 생체적 재난과 디지털 감시사회 앞에서 무력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문명사회라면 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마지막 보루는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의 공동체는 혐오, 두려움에 기반한 감시기술의 삶을 택할지, 혹은 냉철한 이성에 기반해 따뜻하고 창의적인 연대를 추구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지. 현재의 선택은 코로나19 이후 사회의 뉴노멀이 될 것이다.

<주윤정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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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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