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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크리스티안 불프 독일 대통령의 2012년 자진 사임 배경이 회자됐다. 독일과는 너무도 다른 우리의 현실 때문이었다. 주지사 시절 그는 집을 신축하며 친구에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렸고 이를 갚기 위해 시중 금리보다 낮은 은행 대출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연이어 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보도되자 그는 언론사에 협박성 전화를 걸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독일 시민 85%가 퇴진을 요구했다. 그도 왜 억울함이 없었겠는가. 사임 이후 기소된 형사재판에서 그의 직권남용죄는 무죄로 판결되기도 했다.

사임의 배경이 된 의혹들의 자잘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잃어버렸을 때 즉각 정치적 책임을 지는 모습,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불신임 압력이 메르켈 정부의 검찰을 움직여 대통령의 형사소추 면책특권 해제를 요구하게 하고 의회가 이를 승인하려던 일련의 과정이 우리의 현실과 극명하게 비교됐기 때문이다.

불프 대통령 사임의 경우 권력자에 대한 높은 도덕성과 정직성을 요구하는 독일의 정치문화가 그 요인으로 지적되지만, 그러한 문화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제도의 작동에 대한 개인들의 학습된 경험이 필요하다. 즉 권력자에 대한 시민사회의 실질적 권한 행사는 제도와 행위자 간의 오랜 ‘교환과정’을 거쳐 구성원들의 제도적 삶의 양식으로 정착될 때 가능하며 이는 곧 거버넌스의 민주적 수준을 결정한다. 나라별로 상이한 수준의 거버넌스는 국가 권력과 시민사회 간의 서로 다른 지배-통제, 배제-협력의 질서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21일 청와대 홍보관인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를 방문한 관광객이 대통령관에 마련된 박근혜 대통령 관련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탄핵심판을 앞두고 스멀스멀 ‘질서 있는 퇴진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간 수구·병리적 ‘아스팔트 보수’의 전투력에 중독되어온 권력의 기회주의자도 이때다 싶은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품격과 민주공화국에 대한 반동의 언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탄핵기각과 질서 있는 퇴진? 국민 편 가르기를 통해 자신들의 잃어버린 권력기반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애국이나 보수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촛불시민이 처음부터 요구한 것은 대통령의 자진 사퇴였고 그것이 곧 ‘질서 있는 퇴진’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고 이에 시민들은 의회를 움직여 탄핵심판이라는 제도적 기제를 작동시켰다. 탄핵심판 와중에도 박 대통령은 탄핵되어야 할 이유를 더 쏟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기각은 그를 지켜줄 권력공간을 위한 수구·퇴행적 질서로의 복귀일 뿐이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겪을 민주적 거버넌스에 대한 좌절의 경험은 결국 국가와 시민사회 간에 각자도생의 신호만 강화할 뿐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개인이 곧 헌법기관이 된다는 것은 주권자의 의사가 갖는 헌법적 무게감을 의미한다. 정치적 의미에선 국민이 곧 헌법인 것이다. 권력자의 정직성이 시민들로부터 의심받는 상황, 그 자체가 공직에서 내려와야 할 이유가 되는 독일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민주공화국의 국민들이 이 정도로 분노하면 정치적 책임을 질 줄 아는 거버넌스를 작동케 해야 한다. 이제 국가권력과 시민사회 간 지배와 통제의 제도적 질서를 재구성할 수 있는 동력은 탄핵뿐이다. 그래서 탄핵이 ‘질서 있는 퇴진’이다.

장백진 | 거버넌스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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