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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종영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자본의 욕망으로 넘쳐나는 서울, 그 도시의 욕망에서 소외된 ‘평범한’ 젊은이들의 삶을 다룬다. 소외는 경기도로 형상화되는데, 주인공 삼남매가 살고 있는 경기 산포시는 서울 사람들은 어디 붙었는지 알 수 없는 먼 시골이다. 거주 지역은 계급과 연결되고, 경기도민은 달걀노른자를 둘러싼 흰자처럼 주변부 인생을 사는 촌스러운 사람들로 상징된다. 이 드라마는 평범한 우리가 평범한 자본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평범한’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문제적이다. ‘보통의’(ordinary)를 뜻하므로, 꼭 부정적으로 들리지는 않지만,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평범함의 의미는 ‘열등함’으로 변질되고, 평범한 사람들은 열등한 사람들이고 열등감을 갖고 살아간다. 경기도민 삼남매도 마찬가지다. 리서치 회사 팀장으로 일하는 첫째 염기정은 자신의 매력자본이 어마어마하다고 믿으며 번듯한 서울 남자를 만나려 하는 30대 후반의 여성이다. 자신의 평범함을 남자를 통해 해소하려 한다. 둘째 염창희는 편의점 본사에서 일하는 30대 중반의 대리인데, 자격지심으로 서울 사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다. 열등감은 차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난다. 막내 염미정은 카드 회사에 다니는 비정규직으로 상사에 시달리고 주눅 들어 사는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남자친구들은 다 ‘개새끼’였고, 큰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해도 항의도 제대로 못하고, ‘단정’히 살아간다. 그러나 왜 이들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인가? 그들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히 살아가지 않는가? 오히려 평범함을 열등함으로 평가절하하는 우리 사회가 문제가 아닐까?

또 다른 면에서 ‘평범한’의 사용은 문제적이다. ‘흔한, 남들과 공유하는’(common)을 뜻하는 평범한 것은 곧 ‘보편적인’ 진리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평범한 자본의 욕망은 보편적인 욕망으로 이해된다. 남들이 그 욕망을 좇으므로, 당연히 나도 좇아야 한다. 그러나 그 욕망이 정말 나의 욕망일까? 삼남매는 공기 같은 그 욕망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막상 기정이 선택한 사람은 번듯한 서울 남자가 아닌, ‘애 딸린 홀아비’이다. 창희는 구씨의 비싼 외제차를 몰게 되지만, 차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허상임을, 명예·돈에 대한 욕망이 없음을 알게 된다. 미정은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한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기 시작한다. 해방클럽을 만들고, ‘해방일지’를 쓰며,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을 ‘뚫고 나가’기로 결심한다. 이름도 모르는 외지인 구씨에게 ‘날 추앙해요’라며 다가가고, 그를 추앙한다. 구씨가 이별을 고하며, 서울로 가서 평범하게 남들과 같은 욕망을 가지라 말하지만, 미정은 ‘난 그냥 이렇게 살 거야’라며 평범한 욕망을 거부한다.

평범함의 세속적인 의미에서 해방될 수 있을 때, 비로소 평범한 우리는 평범한 자본의 욕망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평범함이 사소한 게 아니라 소중한 것임을 알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을 누린다면? 사실 열등감에 허덕이는 삼남매를 그나마 살게 했던 건 고향 친구들과의 소소한 대화, 눈앞에 펼쳐진 자연 풍경, 어머니의 집밥이었다. 구씨와 미정의 사랑은 밭에서 함께 일하고 용달차를 타고 돈가스와 만두를 먹는 소박한 일상에서 깊어졌다.

우리 사회는 풍요롭지만 불평등하고,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더 커지고, 비교와 경쟁은 더 치열하다. 끊임없이 소비를 권하고, 비싼 차를 끌고 비싼 옷을 걸치면 행복해질 거라 현혹한다. 계약직이라고 갑질하는 최 팀장, 부자라고 남을 무시하는 안하무인 정 대리, 서울이 아닌 지역을 폄하하는 속물 회사동료, 자식보다 돈이 더 중요한 비정한 엄마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도 ‘사랑스러울’ 수 있고 평범한 자본의 욕망이 나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면, 평범한 일상을 소중하게 누릴 수 있다면, 평범한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타인의 욕망에 갇혀 허우적대고 그 욕망에서 벗어나려 고군분투하는 용기 있는 삼남매의 성장기를 현실적이지만 따뜻하게 그린 <나의 해방일지>는 많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 그리고 나는 삼남매를 닮은 우리 시대의 평범한 젊은이들을 응원한다, 추앙한다!

 

윤선경 한국외국어대 영어통번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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