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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푸틴 대통령 방한의 의미

경향 신문 2013. 11. 11. 16:26

지난 7일 아침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한·러 친선협회와 인간개발연구원 주최로 ‘푸틴 대통령의 방한 의미와 한·러 관계 전망’을 주제로 하는 특별세미나가 개최됐다. 12~13일 푸틴 대통령이 방한, 박근혜 대통령과 가질 정상회담의 의미를 미리 짚어보는 모임이었다. 모임의 발제자로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와 이윤호 직전 주러시아 대사가 나왔다.

만 4년째 근무하고 있는 브누코프 대사는 이날 발제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브누코프 대사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동북아 지역에 안보와 평화를 보장할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를 제안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지난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양자 정상회담에서 제안했던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이 푸틴 대통령의 안보협력체제와 대단히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양국 사이에는 이미 이 문제 논의에 많은 진전이 있었으며 이번 서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동북아와 한반도에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의미있는 합의와 제안을 내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악수하는 한-러 정상 (경향DB)

브누코프 대사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이 북핵 위기과 겹쳐서 대단히 위험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남한과 북한, 미·일과 중국 양 당사자들이 자제할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한반도 정세는 연해주·시베리아 거주민들의 안전과 평화와도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북핵 폐기 입장에 한국과 완전히 일치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6자회담을 통해 합의에 이르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사는 또 시베리아~한반도 철도 및 가스관 연결, 그리고 연해주·시베리아 경제개발이 논의되어 왔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남·북·러 3각사업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 다시 말해 대 중국 봉쇄정책이 일본의 재무장과 집단적 자위권의 부여로 구체화되면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미·일을 한편으로, 중국을 다른 편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 구상을 한국과 함께 제안할 경우, 미·중 대결구도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 예상된다. 아직 세계 제2위의 핵 강대국인 러시아가 동아시아에서 대결이 아닌 대화, 전쟁이 아닌 평화를 들고 나올 경우, 미·중 대립 갈등에 가장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한국에 자립공간(균형외교)을 만들어 줄 것으로 보이며 미국의 재정위기와 군사비 삭감으로 미국의 대역을 자임하고 나선 일본은 재무장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명분을 찾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중국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러시아와 한국의 동북아안보협력체제 제안으로 안도의 숨을 쉴 나라는 중국이 될 것이다. 러시아는 최근 시리아 내전에 미국과 유럽 제국이 군사개입하려던 것을 중재,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되는 것을 막아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이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러시아와 한국은 이 제안으로 미·중 G2 구도로 치달으면서 긴장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던 동북아에 세력균형을 향한 ‘선순환 국제관계’를 조립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 중국 평화공존론자들도 일본의 재무장 불가론을 다시 주장하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중국, 일본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활력 있는 나라들이 조밀하게 몰려 있는, 그러나 지역 협력체제를 가지고 있지 못했던 동북아에 안보협력체제가 등장하는 것이 유럽에서 헬싱키 안보협력체제가 출현해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공존과 번영으로 이끌었던 선례를 다시 만들어낼 것인지 주목된다. 남북한과 미·중·러·일을 구성원으로 하는 동북아안보협력체제의 중심은 한반도가 될 수밖에 없다. 바로 남북의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이 전제되는 구도다. 이 구도를 미국이 수용하는가 여부가 최대의 관건이다.

참고로 1904~1905년 러일전쟁 전에 러시아는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던 유일한 외국이었고 일본의 신변위협 때문에 고종황제가 러시아 대사관에 1년 이상을 피신했던 사실(아관파천)도 다시 기억해 두어야 할 역사다. 아울러 150년 전 함경북도의 조선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러시아에 정착하면서 조선인 집단이민의 효시가 됐다. 1863년부터 시작된 조선 농민들의 연해주 이주는 1864년 제정러시아 당국의 공식 인가를 받았다. 최초의 집단적 국외이민이 1902년 하와이 설탕농장 노동자 이주였다는 오류는 바로잡혀야 한다.

이부영 | 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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