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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프리랜서’라는 외국어의 세련된 명칭이 영화 스태프의 직업을 규정하는 가장 그럴 듯한 말이라 생각했다. 현장의 많은 스태프들은 프리랜서로 불리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프리랜서의 이미지는 자유로운 활동과 고수익이었다.

그러나 촬영 일정은 제작사가 정한 대로 진행되었고 습관처럼 했던 24시간 촬영은 스태프들의 자유로운 시간을 잊게 했다. 일을 하면서도 줄어드는 통장 잔액은 고수익으로 포장된 프리랜서를 달리 보게 했다. 영화 스태프들은 프리하게 일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프리랜서로 ‘퉁쳐’졌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근로계약은커녕 계약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영화를 포함해 콘텐츠를 만드는 이른바 문화산업은 어찌됐건 버텨야 하는 일이 최선인 것으로 알았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으니 최저임금보다 못한 임금을 받아도, 24시간 일하는 것이 반복되어도, 쉬는 날이 없어도 감수해야 하는 일은 과연 내일도 모레도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현장 스태프들의 이런 회의와 달리 좋아서 하는 일이니 감내해야 한다는 말에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는 책임론이 덧입혀지며 ‘프리랜서’라고 그럴싸하게 명칭되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특수한 존재로 차별되어 왔다. 종합소득세 신고 무렵에야 내가 낸 3.3%의 세금이 인적용역사업자에 해당되는 사업소득세임을 알게 되고,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부여된 사업자 지위는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프리랜서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프리(free)하지 않은 현실이 가려졌다. 

CJB청주방송의 고 이재학 PD 역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해 왔고 그 이름으로 가려진 차별과 혹사를 참고 견디다 못해 처우 개선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해고로 답했다. 이 PD는 부당한 해고였음에도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해고가 아니며 부당하지 않다는 주장에 맞서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송을 위해 꿈을 키워왔고 방송을 만드는 일을 즐겨 했던 그에게 더 이상 이 현장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더는 계속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회사는 책임을 피하고 아이템 선정, 섭외, 구성, 촬영, 편집 등 정규직 PD가 해왔던 일을 똑같이 해오면서 수십편의 프로그램을 만든 노동자에게 정규직의 대우는 없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방송에 매진했음에도 증명을 해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회사에 치가 떨렸을 것이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로 취급당하며 최저임금도 못 받고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것이 서러웠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사용종속성’이라고 한다.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확인해내는 일이다. 자유롭지 않은 사정은 계약서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일하고 있는 사정을 제대로 확인해야 얼마나 가려져 있었는지 알게 된다. 방송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사용종속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려져 왔던 것이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가려지고 특수할 것 없음에도 특수하다는 말로 은폐되어왔던 것을 드러내야 한다. 오랫동안의 꿈을 좇아 PD가 되었음에도 방송을 만드는 일을 더는 계속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더 이상 회사의 편리에 따라 쓰이고 버려지는 노동자가 존재해선 안된다. 우리의 노동은 하나도 특수할 것이 없다.

<안병호 |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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