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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에 지난 9일 실린 논문은 기후변화가 이미 비상구역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파리협정은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내로 막자는 합의인데, 기온이 1도만 상승해도 16개 환경지표 가운데 5개가 티핑포인트, 곧 회복 불가능점에 이른다고 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훨씬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기후변화의 경각심은 시민에게 상당히 퍼져 있다. 기업과 정부도 탄소배출량 감축에 나름대로 동참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후변화 속도는 자꾸 빨라진다. 시민의 각성이 부족해서일까? 탄소흡수기술을 개선해야 할까? “그건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있다. ‘기후정의’운동이다. 

기후정의운동은 기존 기후운동이 기후변화의 근본원인을 외면한다고 비판한다. 기후정의 관점에서 기후변화의 원인은 온실가스 이전에 자본주의 체제다. 기후변화는 시장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성공’ 때문이다. 싼 화석연료를 이용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스템이 잘 작동했기에 지구가 사달이 났다. 그래서 기후정의운동은 ‘탄소중립’이 아니라 ‘체제 전환’을 목표로 삼자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운동은 기후정의의 대의를 지지한다. 기후정의와 기본소득은 함께 가야 하는 운동이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조건 없는 소득 보장을 제공하는 것이고 그 철학은 지구라는 ‘공유부’의 권리를 평등하게 누리자는 것이다. 공유부를 사유화해온 자본주의 경제성장은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낳았다. 기후정의의 문제의식은 지구 공유부 회복에 나서자는 기본소득 철학과 연결된다. 그런데 기후정의운동 안에 기본소득을 향한 불편한 시선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기본소득은 분배 영역에서 부분적 교정만 추구할 뿐 기후변화의 원인인 생산 영역의 불평등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이다. 또 기본소득 지급은 소비를 조장해 온실가스 배출을 늘린다는 비판도 있다. 

기본소득운동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분배 영역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의 폭주를 막는 무기다. 자본주의 체제는 임금노동 위에 돌아가며, 사람들은 임금노동 관계에 들어가려고 또 거기서 탈락하지 않으려고 경쟁한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의존과 노동시간을 줄여,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일과 삶의 전환을 가져온다. “나는 종말보다 월말이 더 걱정”이라는 평범한 노동자가 기후정의 편에 서려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소비 조장의 걱정은 기우다. 자본주의 체제는 소비 불평등 체제다. 건강한 삶을 위한 필수 재화는 필요한 사람에게 모자라게 돌아가고, 생산과 소비 과정에 대량의 탄소를 뿜는 낭비적 재화는 부자에게 넘치게 돌아간다. 부자에게 과세해 그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주면 낭비적 소비는 줄고 필수적 소비는 늘어난다. 기후정의에 들어맞는다.

일부 기후정의운동가는 기본소득운동의 ‘탄소세 도입’ 주장을 비판한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고,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난한 사람의 주머니를 턴다는 이유다. 사실이 아니다. 스위스는 탄소세를 난방연료에 부과하고 수송연료에는 부과하지 않았는데, 1990년에서 2019년까지 수송연료의 탄소배출량은 그대로였으나 난방연료의 탄소배출량은 30%나 줄었다. 스위스는 탄소세 세수 일부를 전체 국민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해 저소득층의 부담을 덜어줬고, 이로써 국민의 지지를 얻어 탄소세율을 꾸준히 높일 수 있었다.  

기후정의와 기본소득은 ‘깐부’다. 기본소득은 기후재난의 최전선에 선 당사자에게 기본 생활수단을 보장하여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다. 기본소득의 대중적 지지 위에 탄소세와 횡재세를 도입하면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기업권력의 힘이 약화되고 민주적인 에너지 전환의 길이 열린다. 이를 위해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9월24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다. 기후정의와 기본소득은 만나야 한다. 만나서 기후재난 없는 세상, 모두의 존엄이 보장되는 세상을 함께 외치자.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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