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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노총, 100만 조합원의 민주노총이 기로에 섰다.

사회적 대화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김명환 집행부의 두 번 도전이 모두 실패했다. 결국 김명환은 사퇴했고, 정무직 실장인 나도 민주노총을 떠나 보건의료노조로 복귀한다. 실무에 깊이 관여했던 내게 많은 이들이 질문을 던진다.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는 불가능한가? 민주노총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첫 질문과 관련해 그것이 상당 기간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가 이 땅의 경제민주화와 노동존중사회 실현,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위해 꼭 가야 할 길이라면 노정 모두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22년 만에 다시 시도한 사회적 합의는 실패했지만 가능성도 남겼다. 외형적으로 갈등 확산과 부결로 마무리되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일천한 경험 속에서 관념적 논쟁만 하던 사회적 대화가 최종안을 만들고 중앙집행위원회(중집)부터 대의원대회까지 파국 없이 구체적 찬반토론을 진행했다. 그 결과 서로의 차이와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은 긍정적이다. 민주노총이 이후 소통의 리더십과 함께 차분하게 교섭방침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토론이 진행된다면 전향적 입장 변화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부도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산업 업종 지역에서의 산별교섭, 노사정 대화의 경험 축적과 노사단체 대표성 강화 없이 전국단위 사회적 대화는 ‘시시포스의 신화’가 된다.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렸다 다시 굴러떨어지는 ‘헛수고’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확인된 만큼 돌아가더라도 초기업 노사관계발전에 대한 근본전략이 모색돼야 한다,

둘째 질문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민주노총 패싱과 사회적 고립을 전망한다. 때로 민주노총은 ‘고립된 조직’의 대명사인 ‘갈라파고스섬’을 연상시킨다. 오랫동안 정부와 자본, 보수언론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외부의 탄압과 비판에 굴하지 않는 관행들이 굳어지면서 변화에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돼 버린 듯하다. 문제는 고립된 섬이지만 내부 위기의식은 크지 않다. ‘자급자족’과 ‘자력갱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공공이든 민간이든 기업별 교섭과 현안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은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대화와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무와 관련된 논의는 중앙에선 치열하지만 현장으로 갈수록 강도가 약해진다.

결국 민주노총이 어디로 갈 것인가의 문제는 사회적 고립과 투쟁일변도 노선비판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창립 당시 표방했던 ‘산별노조 건설’과 ‘사회개혁투쟁’ 노선을 어떻게 다시 재정립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번 최종안 투표 결과는 민주노총이 이후 어디로 갈 것인지를 가늠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합의안을 부결시킨 61.7%(805표)가 교섭보다는 투쟁을 강조하는 민주노총의 전통적 흐름을 반영했다면, 합의안에 찬성한 38.3%(499표)는 새로운 변화의 씨앗이다. 모든 의견그룹과 중집위원의 압도적 다수가 쓰레기 같은 야합안이라면서 부결을 외쳤지만 합의안을 디딤돌로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자는 노선에 무려 38.3%가 지지한 것이다.

민주노총의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현재의 어려움을 딛고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으로 거듭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태일 열사 50주기, 민주노총 창립 25주년이라는 숫자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여름이다.

<이주호 전 민주노총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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