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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21일 오전 광주. 전남도청이 위치한 금남로를 비롯해 광주 전체는 슬픔과 아픔, 분노로 뒤섞였다. 인구 70여만명 중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금남로에 모였다. 오후 1시 무렵 군이 국민을 향해 발포했다. 시민들은 쓰러진 사람들을 병원으로 옮기며 총을 들었다.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하자 헌혈하고 주먹밥을 만들었다.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다친 사람들을 돌봤다. 그렇게 광주는 상처받은 공동체를 치유해갔다. 5월27일 군의 무력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역사’ 속으로 걸어간 사람들은 망월의 품에 안겼다. 그 뒤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 망월동으로 가는 길이 막히면 산을 넘어 찾아가고 부정한 정권에 대항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세월의 무게만큼 많은 조사가 이뤄졌으나 수많은 문제가 산더미다. 2018년 2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된 지 두 해가 흘러 뒤늦게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잘잘못을 따질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화살같이 빨리 지나가는 게 시간이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 12척만으로 전장에 나서는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기대하며 몇 마디 거들어본다. 

새로 출발하는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법대로’, 법에 있는 과제만 제대로 풀어도 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의 문제이다. 왜 국군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발포했으며 글로 담지 못할 처참한 사건을 저질렀는가. 당시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고 그들은 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가. 국민들의 인권이 어떻게 공권력에 의해 뭉개졌으며, 헌정 질서는 어떻게 유린됐는가. 그리고 대체 이 모든 행위를 누가 명령했는가. 

어디 하나 쉬운 과제가 없다. 관련 자료가 상당히 남아 있으나 의외로 핵심 자료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결정적 자료(smoking gun)’는 사라지고 때로는 조작됐다. 그렇기에 자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철저하게 살펴야 한다. 5·18 전체를 볼 수 있는 큰 그림은 당연하고, 개별 사안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관련자들, 특히 군인 출신들에게 1980년 5월 광주는 잊고 싶은 기억이다. 몇몇 분들의 용기 있는 고백을 제외하면 대개는 입을 닫는다. 40년 전 일이며 지우고 싶다면서.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피해자들, 더 나아가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그 활동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배 놔라 감 놔라’ 해서는 안 되겠지만, 국민들이 박수 치거나 따끔하게 혼낼 때도 있어야 한다. 늘 열린 마음으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바란다. 

끝으로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에 독립성이 보장되기를 바란다. 보고의 의무가 있으나 그렇다고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를 어그러뜨리는 것으로 나가면 안 될 것이다. 관심은 가지되 간섭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3년 뒤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권위 있는 보고서’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그로부터 제대로 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치유가 출발할 수 있다.

<노영기 | 조선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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