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에 ‘미아리 텍사스’를 검색해봤다. 미아리 텍사스가 있던 곳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미아리 텍사스가 정말 없어졌냐는 질문도 보였다. 지도검색에는 ‘없는 곳’으로 나왔다. 

지도에는 없다는 그곳에 지난달 다녀왔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성매매 집창촌. 길치라 걱정했는데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느린 걸음으로 10분이면 닿는 거리. 식당과 옷가게와 동물병원, 백화점, 고층아파트가 있는 바로 옆 골목에 한국도 미국도 아닌 괴상한 이름의 그곳이 있었다. 골목 입구엔 색색깔의 굵은 실이 ‘청소년 금지구역’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드리워져 있었다. 

미성년자들이 들어선다고 출입을 통제하는 사람도 없고, 밧줄 같은 실로 가린다고 가려지지도 않을 골목엔 아침부터 ‘삐끼이모’(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은어)들이 나와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두리번두리번하니, 삐끼이모들이 “무슨 일로 왔냐”고 했다. “약사님 인터뷰하러 왔다”고 하니 더 묻지 않았다(그날 이 골목에서 23년 동안 약국을 하며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 ‘약국이모’ 이미선씨를 인터뷰하러 갔다). 입장허가를 받은 느낌이 들어, 골목 안쪽을 이곳저곳 둘러봤다. 

서울 하월곡동 '미아리 성매매 집창촌'의 아침.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처음엔 대체 어디가 성매매업소라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흔히 연상하는 ‘빨간불’은 보이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업소마다 검은색 선팅지가 붙어 있었고 이 안에 사람이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업소의 외관은 허술하고 낡았다. 개미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업소들 중 한 곳에 문이 열린 것을 봤다. 한 여성이 쌀을 씻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성매매 여성들의 살림을 해주는 ‘주방이모’인 듯했다. 10년 넘게 큰 진전이 없는 ‘도시환경정비사업’ 공고문도 보였다. 

허름한 외관을 좀 더 오래 관찰하니, ‘영업중’이라는 표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업소 앞에는 ‘카드 얼마, 현금 얼마’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글씨가 닳지 않고 선명했다. 한 업소 바로 앞에는 여러 은행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현금출납기가 있었다. 은행은 시간을 맞춰 돈을 빼가고 넣으며 성매매 골목의 현금흐름을 관리했다.

약국에서 하루를 보내며 여러 명의 동네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한 할머니는 여섯 박스 분량의 고추를 직접 빻았다고 했다. 사서 쓰지 뭐하러 애를 쓰셨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내 자식들 먹일 김치에 쓸 건데…”라고 했다.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는 분이었다. 

허름한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는 쓸쓸한 얼굴로 지난주에 아내를 납골당에 묻고 왔다고 했다. 성매매 업주였다. 명품으로 치장한 모델 같은 손님과 모자를 푹 눌러쓰고 군데군데 상처가 보이는 손님은 모두 성매매 여성이었다. 겉으로 봐선 그들의 삶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본격 영업시간’이 다가오자, 골목에 사람들이 늘어났다. 업소 앞 의자마다 손님과 가격을 흥정한다는 ‘마담이모’들이 앉았다. 각각 휴대전화를 들고 유튜브나 TV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몇명의 남성들이 골목 안쪽을 왔다갔다 했다. 외국인도 보였다.  

성매매를 금지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15년이 됐다. 집창촌 성매매는 사실상 방치되고, 신종 성매매가 번성하면서 집창촌은 점점 더 낙후되고 있다. 해가 져도 업소는 컴컴하다. ‘홍등가’는 옛말이 됐지만, 그곳엔 여전히 성매매가 일상인 이들이 있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다시 평범한 풍경이 펼쳐졌다. 버스전용차로에선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렸다. 우동집엔 늦은 저녁을 먹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바로 몇분 전까지 있었던 골목은, 다시 찾아가면 사라져 있을 것처럼 아득히 멀어 보였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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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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