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없는 동네에 살다보니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하는 일 때문인지 버스 안에서도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관찰하는 몹쓸 버릇이 있다. 출근길에 만나는 20대 자폐 청년은 정류장까지 배웅 나오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사랑해” “사랑해”, “차조심” “차조심”.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사랑해”를 반복하는 걸 보고 있으면 어쭙잖게 울컥할 때가 있지만,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 동반자 중에서 정체가 궁금한 사람은 따로 있다. 누군가 하면 퇴근길에 가끔 마주치는 ‘공짜 승객’이다. 내가 처음 “돈이 없으니 그냥 태워달라”던 그를 봤을 때만 해도 뭔가 사정이 있으려니 했었다. 지갑을 두고 나온 것을 뒤늦게 알아챘거나 누군가에게 지갑을 털렸을지도 모른다고. 아무리 보아도 그의 입성은 버스비를 내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리는 승객으로는 안 보였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건장한 체격에 얼굴색도 하얗고,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은 말쑥한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무임승차를 허락했다. 그 후에도 이 남자의 무임승차는 적어도 나와 마주친 날에는 어김없이 계속됐다. 이따금 내리라고 하는 기사도 있었지만, 상습적인 무임승차가 들통났으면 하는 내 바람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기사들은 그를 버스에 태웠다.

그동안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는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려, 곧바로 편의점으로 직행한다. 언젠가 한번 편의점으로 가는 그를 따라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그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물건을 사러 갔다가 본 적도 더러 있는데 언제나 그의 손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버스비로 컵라면이라도 먹는다면 모를까 아이스크림이라니. ‘돈이 있는데도 왜 버스비를 안 내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런 오지랖을 부릴 정도로 덜 붐비는 버스를 타고 다니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버스에선 언감생심이다. 하루 일감을 얻고, 빌딩 청소와 경비를 하러 집을 나서는 노동자들로 버스의 첫차는 만원이다.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들의 존재를 일깨운 건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고 노회찬 의원의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이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매일 새벽 버스를 타고 중년 여성들이 강남의 빌딩으로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지만, 이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후 이 연설이 다시 회자됐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이달 중순 만원버스에 시달리는 이들의 고단함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4개 버스노선의 새벽 시간대 배차를 늘렸다. 이들의 출근길은 좀 나아졌을까. 서울시의 생색에 비해 체감 효과는 크지 않다고 한다. 2015년 도입한 ‘조조할인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추승우 서울시의원이 공개한 ‘최근 3년 대중교통 조조할인 현황 자료’를 보면 교통혼잡 분산을 기대한 당초 취지와 달리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두 정책 모두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내 처지를 벗어나 다른 이의 삶을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다. 동 트기 전 집을 나선 노동자들로 버스 첫차가 얼마나 붐비는지, 그 안에서 그들이 새벽잠 쫓으며 밀리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를. 컵라면이 아닌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야만 하는 누군가의 ‘현실’은 보이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재빨리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재단해 버린다.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라고.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나는 내내 불편했다. ‘봉테일’이 꾸며놓은 영화 속 가난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인 것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을 보면서 마음이 서늘해졌다. 과연 지금의 나는 그들과 다른가.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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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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