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취재 분야로 출판을 담당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매주 수많은 책 중에서 소개할 신간을 선정하고 서평까지 쓰는 것이다. 매일 회사로 배송되는 책들을 검토해 부 전체 회의에 올릴 리스트를 만든다. 출판사의 책 배송을 대행하는 업체가 붙여둔 스티커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출판사의 땀입니다. 희망을 선물해주세요.’ 전에는 누가 공짜로 줘도 안 읽을 제목을 가진 책이라도 다시 보게 만드는 마법의 문구다.

1차로 검토해 추린 책이 15~20권 정도가 된다. 문학과 학술을 맡고 있는 다른 기자들의 리스트를 합치면 다시 30여권이 된다. 이 책들을 놓고 문화부원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먼저 출판 담당이 책의 주요 내용과 특이 사항을 설명한다. 길고 긴 회의 끝에 최종적으로 경향신문 지면에 소개될 책을 결정한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선택을 받은 책은 8~9권에 불과하다. 단신으로 소개하는 책까지 합쳐도 20권이 안된다.

부서 전체 회의를 거쳐 결정한다고는 하지만 회의에 올라갈 책을 고르는 것은 순전히 출판 담당의 몫이다. 1차 검토에서 탈락한 책들은 대부분 다시 볼 일이 없다. 이러다 보니 출판 담당으로서 선택에 많은 부담을 느낀다. 혹시나 책을 고르는 눈이 부족해 좋은 책을 놓치지나 않을까 항상 불안하다.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써 송고한 후에는 불안감이 더 커진다. 경향신문의 신간 소개는 토요일자 신문에 나온다. 대부분 같은 요일이지만 몇몇 신문은 금요일자에 신간 소개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매주 금요일 아침이 되면 여러 신문을 볼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다른 신문부터 본다. 가끔은 새벽에 눈이 떠져 아직 나오지도 않은 지면을 찾아보곤 한다. 토요일에도 마찬가지다. 다른 신문의 출판 담당자들도 나와 비슷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반드시 지면에 써야 할 책을 놓친 적은 없는 것 같다. 수준 이하의 책을 골라서 웃음거리가 되지도 않았다. 지면을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전체적으로 보면 비슷비슷한 책이 각 일간지의 선택을 받았다.

이렇게 한 달여를 보낸 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일간지들이 선택하는 책은 다 비슷비슷할까. 가장 ‘좋은’ 답이야, 모두가 가장 좋은 책을 골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그럴 일은 없다. 아주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취향이 갈리는 것이 책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은 사람, 정확히는 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비슷한 학력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며, 비슷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독자에게 보이기’ 가장 좋은 책을 선택하려 한다면 비슷한 책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를 포함한 요즘 기자의 한계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하게 알고 있을지라도 사람이 자신이 자라왔고 현재도 살아가고 있는 환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영역 밖으로 단 한발을 내딛기가 어렵다. 취재원에게 입으로는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기사에는 온전히 담지 못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까치발을 딛고서라도 내가 몸담고 있는 구역 밖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과감히 밖으로 나가보는 것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쉽지 않지만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지난 17일 신간 <판결과 정의>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김영란 전 대법관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책을 쓰는 이유로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또 “내 책을 읽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해줄 때 가장 고맙다”고도 했다. 전직 대법관이자 교수에게 기자의 가장 큰 덕목을 배웠다.

<홍진수 문화부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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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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